'에이스' 앨런 그린버그 前 베어스턴스 회장 별세

입력 2014-07-27 21:25
수정 2014-07-28 04:57
주급 32.5달러 말단직원에서 출발…세계 5위 투자銀 키운 '월가의 전설'

회장 퇴임 7년 뒤 금융위기
베어스턴스 헐값 매각 지켜봐


[ 이심기 기자 ]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월가의 전설’ 앨런 그린버그 전 회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그린버그 전 회장이 뉴욕 맨해튼에서 암 합병증으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49년 미주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 월스트리트에 발을 들였다. 당시 월가에서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그를 받아준 곳은 베어스턴스가 유일했다. 주급 32.5달러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한 그는 트레이더와 파트너를 거쳐 1978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그가 처음 CEO를 맡을 당시 베어스턴스의 직원 수는 1000명, 자산 규모는 46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CEO에서 물러난 1993년에는 직원 수 6300명에 시가총액 18억달러의 투자은행으로 변모했다.

스스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그린버그는 채용하고 싶은 인물로 가난하고(poor), 똑똑하며(smart), 돈에 대한 열망이 있는(desirous of riches) 이른바 ‘PSD 학위’가 있는 사람을 강조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CEO로 있으면서 그는 직원들에게 전화벨이 세 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을 것을 요구하는 등 철저한 훈련과 함께 경영방침을 전달하는 짤막한 글을 수시로 전 직원에게 보내는 ‘메모경영’으로 기업 문화를 바꿨다. 그의 메모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극찬할 정도였으며 1996년 ‘회장이 보내는 메모’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대표적 문구는 “우리가 하는 일에 가장 위험한 요소는 독단과 자기만족이다” “순조롭게 일이 잘 풀릴 때는 부푼 풍선처럼 들떠서 헤프게 돈을 쓰기 마련인데 우리는 예외가 되도록 합시다” 등이다.

그린버그는 그러나 2001년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7년 만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베어스턴스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가 60년에 걸쳐 일군 당시 세계 5위의 투자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JP모간체이스에 주당 2달러, 23억달러의 헐값에 넘어가는 수모를 겪은 것. 당시 그린버그는 사재 36만달러를 털어 직장을 잃은 베어스턴스의 저임 근로자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에이스(ACE)’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린버그는 카드게임인 ‘브리지 게임’의 미국 챔피언을 따기도 했고, 미국마술사협회 회원으로 마술을 즐기는 색다른 재능도 갖췄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그린버그는 금융의 진정한 아이콘으로 ‘에이스’가 없는 금융산업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었다”고 추모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