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인터뷰
투자는 의지 아닌 기회의 문제
좋은 기회 생기면 사업가는 누가 막아도 투자한다
말썽 재발막는 사후규제 바람직…국회입법도 완급조절 해줬으면…
미래 성장성 좋은기업 주목…M&A로 신성장 동력 확충
[ 이태명 기자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열흘간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주(17~20일)에는 두산그룹이 후원하는 ‘디 오픈 챔피언십’과 ‘두산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 참석차 영국에 들렀다. 귀국 이후엔 정의화 국회의장(21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2일)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데 이어 23일 대한상의 하계포럼이 열리는 제주로 내려왔다. 강행군의 연속이지만 그는 “하계포럼에서 쉬었다 간다고 말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내수진작, 규제개혁 등 고민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다. 기자간담회와 별도로 24일 박 회장을 만나 규제개혁, 노동문제 해법, 두산그룹 신사업 얘기 등을 들어봤다.
▶정부 규제개혁 의지가 무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차원에서 정부와의 소통채널을 만들 계획은 없나.
“채널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규제개혁에 대해서도 지금껏 많은 얘기를 해왔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대통령도 실천의지를 여러 번 강조하지 않았나. 마음이야 정말 급하지만 2기 경제팀도 출범했으니 기대를 가져보려 한다.”
▶사내유보금 과세를 어떻게 보나.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돈이 가계에 흘러들어 내수를 진작하는 취지에는 모두들 공감한다. 문제는 수단이다. 정부의 구체적 시행방안을 본 뒤에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유보금 활용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게 맞다. 기업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시행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통상임금 등 노동문제로 기업 현장이 혼란스럽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으로 지금 정신이 없다. 하나하나가 임팩트 있는 것들이고 다 합하면 기업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노동 이슈가 이렇게 하나하나 쌓여가서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 임금구조 개편 등 대타협이 있어야 할 때다. ”
▶정부뿐 아니라 국회와도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엊그제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입법의 완급 조절을 해달라고 말했다. (국회가) 법안이 필요해서 만드는 건 맞지만 선진국에서 한다고 한꺼번에 다 쏟아내기 시작하면…(기업이 너무 힘들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법이 쏟아지는데 나한테 적용되는 게 뭐고, 어떻게 바뀐 건지조차 잘 모른다. 국회의원들의 입법권한과 위치를 존경하지만,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고 완급을 조절해줬으면 좋겠다.”
▶국정감사 때 기업인들을 또 증인으로 부를 것 같은데.
“안 불러주거나 덜 불러줬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기업인만 부르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한다.”
▶대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하다는 지적이 있다.
“투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다. 기업은 기회가 생겨야 투자하는 것이고 사업하는 사람은 기회가 생기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한다. 과거 우리가 조선산업에 뛰어들 때 해외에선 ‘대규모 조선소를 한꺼번에 짓는 나라가 어딨느냐’며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투자했고 경제 기적을 이뤘다. 이제 글로벌 시장이 점점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투자할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국내 기업도 다른 나라 기업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투자하리라 생각한다.”
▶최근 두산그룹이 연료전지를 신사업으로 정했다.
“연료전지 사업은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분야다. 10년 후 시장규모가 90조원까지 갈 것으로 본다. 사실 신성장동력을 찾는 작업을 오랜기간 해왔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것은 7년 만이다. 신사업 발굴은 의지만 갖고서는 안 되고 기회가 와야 가능하다. 때마침 우리에게 퓨얼셀파워코리아와 미국 클리어에지파워라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사업을 도약시키려면 대기업의 자금력, 사업운용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 타이밍이 딱 맞았다.”
▶한국식 기업문화 때문에 인수합병(M&A)에 실패한 국내 기업 사례도 많다.
“한국식 기업문화의 특징이란 게 뭔지 모르겠으나, 성공한 글로벌 기업 문화는 대동소이하다. 정확한 비전에 의해 조직원들이 움직이고 친소관계, 연공서열이 아닌 공정한 평가를 직원들의 승진·보상에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기업을 인수한 뒤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정확한 인사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여기에 맞추는 사람을 승진시키겠다는 원칙을 제시하면 (피인수회사 임직원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일부 기업은 M&A 직후 인적청산부터 먼저 하는데, 그러면 ‘내가 열심히 해도 저 회사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구나’란 생각에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과제를 던져주면 훨씬 창의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도전하지 않는 건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도전하다가 잘못됐을 때 주어지는 페널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첫 방향을 잘못 잡으면 자기 커리어가 정해져버린다. 좋은 학교를 나왔는가, 좋은 직장을 갔느냐가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니 젊은이들이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룹 총수 가운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요즘은 쉬고 있다. 바쁘기도 한 데다 세월호 사건 이후 SNS에 고통이 만연해 있는 게 (싫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올라오고, 그 정보가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한 달을 쉬었는데 앞으로 두어 달 더 쉬려 한다.”
제주=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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