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완전 판매)의 여왕'. 분당 1억 원어치 가방을 파는 쇼핑호스트. 지난해 판매액만 2400억 원을 기록한 업계 최고 베테랑. 올해 14년차인 동지현 쇼핑호스트에게 사용되는 수식어다.
지난 18일 GS샵(GS홈쇼핑) 본사에서 만난 동 씨는 "쇼핑호스트로서 당연히 상품을 많이 파는 게 중요하지만 단순히 상품만 잘 팔려고 했다면 회사를 옮기지도 않을 것"이라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동 씨는 "CJ오쇼핑에 다녔던 14년 동안 혼자 세 시간이 넘는 방송을 맡아보기도 하는 등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와 도전을 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동 씨는 올 5월26일 CJ오쇼핑에서 GS샵으로 둥지를 옮겼다. GS샵 입장에선 스타 쇼핑호스트 정윤정 씨를 잃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이다. 변화를 바라던 동 씨에게도 적절한 기회였다.
'동지현 효과'는 확실했다. 롯데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정 씨의 뒤를 이어 GS샵 간판 프로그램인 '쇼미더트랜드'를 맡은 동 씨는 안방마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쇼핑호스트 동지현 씨가 투입된 지난달 14일 '쇼미더트랜드 뉴시즌'은 첫 방송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지난 5일 방송에선 자체 최고 시청률 0.53%를 기록했다. GS샵 평균 시청률의 17배를 넘는 수치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실시간 참여 역시 첫 방송에 4000개를 넘겨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달 5일 방송에서 7784개로 다시 신기록을 세웠다.
동 씨는 "첫 방송 일정이 상당히 빡빡했다" 며 "회사를 옮기고 첫 출근 한 다음날 바로 6박8일 일정으로 니스와 모나코, 산토리니 등으로 해외 영상 촬영을 떠나야 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은 힘들었지만 빡빡한 일정 덕분이었는지 프로그램 PD와 작가 등 스태프들과 오히려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새 회사와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함께한 낯선 유럽이다보니 소소한 사건사고도 많았다고 동 씨는 털어놨다.
그는 "직접 여행지에서 고른 상품을 쇼미더트랜드 프로그램 중 시청자들한테 선물하기로 예정이 돼 있었는데, 제작진한테 적정 가격대에 대한 얘기를 전혀 못들었다" 며 "가격선을 모르니 눈치가 보여서 처음에 산 것들은 정말 이색적이고 독특하지만, 금액 면에서는 좀 싼 편이었던 반면 여행 일정 뒤로 갈수록 좀 더 비싼 가격대들의 선물들을 골랐다"고 웃었다.
혹시나 선물을 받는 시청자들이 가격대가 너무 싸다고 실망하거나 화낼까봐 걱정이 돼 점차 구매 가격대가 올라가더란 설명이다.
동 씨는 방송 중에 "상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진 임박이에요. 서둘러주세요" 같은 구매를 독려하는 말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구매 독려 대신 스타일은 어떻게 연출하라는 식의 조언을 해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줬다. 그의 생각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한 두 번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어느새 두터운 고정팬층을 이뤘다.
쇼핑호스트 일을 하면서 업계 외 사람들을 만나면 많이 받는 질문이 '방송에서 매진임박이라거나 수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거 거짓말이죠' 하는 것들이었다고 동씨는 털어놨다. 그는 "진행자가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먼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1등 비결을 밝혔다.
동 씨가 쇼핑호스트로 일하게 된 것은 사실 실수에 가까운 '해프닝' 때문이었다.
2000 년 대한항공에서 승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이직을 준비하되 적성을 살리고 싶었다. 마침 CJ오쇼핑 채용 공고를 본 그는 사내 텔레마케터(TM) 교육 업무에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직무 선택 때 절차 상 오류로 '방송호스트'에 지원하게 됐다. 패션, 속옷, 화장품 등 점차 분야를 넓혀가며 14년간 CJ오쇼핑에서 활동한 결과 '완판의 여왕'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핸드백 판매 방송에선 분당 최고 주문금액 1억 원을 넘겼다.
오랜 기간 몸을 담았던 CJ오쇼핑과 새식구가 된 GS홈쇼핑에 대해 동 씨는 "CJ오쇼핑이 뭔가 잘 짜여진 틀에서 움직인다면 GS홈쇼핑은 결속력이 강한 게 장점"이라며 "특히 쇼미더트랜드의 진행자나 제작진들은 모두 단합하는 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동 씨는 지난 한 달여 남짓한 지난 방송에 대해 "내 자신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춰가는데 미흡한 점들이 많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동 씨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대신 써본 경험을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는 쇼핑호스트가 되고 싶다" 며 "쇼미더트랜드에서도 제 나이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나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잘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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