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일 건설부동산부 기자 hiuneal@hankyung.com
[ 이현일 기자 ]
23일 대형 건설업체 최고경영자들이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공사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방안’ 토론회 자리에서다. “잇딴 공사 담합 적발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건설업계 생존을 위한 호소도 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건설사 사장은 “과거 담합에 대한 처벌을 면책해달라는 뜻이 아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제재를 받아 고사 직전에 놓인 건설업계를 고려해 처분을 미루기라도 해달라”고 읍소했다. 다른 건설사 대표들도 사회기반시설 투자 감소,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해 영업이익으로 금융이자 갚기도 힘겨운 형편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대부분 건설업계 위기에 공감했다. 최근엔 4대강, 경인운하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 담합을 이유로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물고 영업정지에 준하는 입찰참여제한까지 받을 처지에 놓였다. 김명수 가톨릭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설업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시장여건도 지속적으로 악화돼 업체들이 ‘생계형 담합’을 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건설사 최고경영자들은 투명 경영과 자정 노력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토론회에선 건설사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합을 오랜 업계 관행으로 묵인하고 조장한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실제 건설담합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유성욱 입찰담합조사과장도 “일부 공사에선 발주처가 담합을 조장한 측면도 파악해(조사 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을 전후로 4대강 사업 등 60조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들을 정부가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대형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한정된 건설사들이 상호 협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건설업계 생존과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건설사들이 최근 공공사업 입찰 자체를 꺼리고 있는 이유부터 정부는 파악해야 한다. 발주제도 등의 개선·보완이 시급하다.
이현일 건설부동산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