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교육부 실패한 '자사고 정책' … 교육청 할 수 있을까

입력 2014-07-23 07:35
수정 2014-09-17 15:45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논란이 교육계 핫이슈로 떠올랐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진보 교육감들이 6·4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되면서다.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곳은 서울이다. 전국 49개 자사고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4개교가 서울에 몰려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평가 결과에 따른 자사고 지정 철회’를 밀어붙이자 자사고들은 집단 반발, 법적 대응 의지를 밝혔다.

하나고를 포함한 서울 25개 자사고 교장들로 구성된 자사고연합회는 21일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희연 교육감은 자사고 말살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교육청이 제시한 일반고 전환 유도 방안 역시 거부하며 ‘강(强) 대 강(强)’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사실 자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교육부가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을 발표했다가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초 이 방안에는 신입생 모집을 할 때 ‘선(先)지원 후(後)추첨’ 방식을 적용해 사실상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최종안에선 입시전형 절차에 면접을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자사고 학생 선발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자사고들의 강력 반발에 교육부가 한 발 물러선 결과였다.

마치 데자뷰처럼 작년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당시 자사고 교장들은 교육부 정책을 ‘자사고 무력화’로 규정하고 대립각을 세웠다. 정책 공청회 장소를 점거한 학부모들은 정부를 규탄했다. 교육부 담당 국장과의 단체 면담까지 간 끝에 자사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학생 선발권 보장을 관철시켰다.

이번 사안은 타깃이 바뀌었다. 교육부가 아닌 교육청과의 갈등으로 번졌다. ‘일반고 살리기’ 과제를 자사고 문제와 연계시킨 점은 같은 맥락이다. 과연 교육청은 교육부가 실패한 일을, 학교와 학부모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성공할 수 있을까.

관건은 당사자의 상황과 심리를 정확히 짚는 것이다. 교육청은 “자사고가 지정 철회되고 일반고로 전환된다 해도 현 재학생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교육부도 했던 말이지만 학부모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전국자사고학부모연합회 양순지 회장은 “(일반고 전환으로) 교육과정은 일반고와 똑같이 운영되는데 비싼 자사고 학비를 내는 건 말이 안 된다” 며 “교육청은 재학생에게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일반고 1학년과 자사고 2~3학년이 공존하는 학교 분위기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양 회장은 “만약 납득할 수 없는 평가 결과에 의해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재학생을 비롯해 졸업생 학부모까지 동참해 학비 환불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사고 학부모 입장에선 단순히 교육과정뿐 아니라 동문 네트워크, 명문교의 위상 같은 효과도 기대하고 학비를 지불한 것” 이라며 “일반고로 전환되면 졸업생 역시 피해를 입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 입시 결과가 대입까지 직결되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란 지적도 나온다. 구조적 문제를 놔두고 ‘자사고 때리기’로만 몰아가선 안 된다는 것.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중·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상황 인식과 괴리가 큰 게 문제다. 자사고가 없어지면 일반고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란 기대는 너무 안이한 문제 인식” 이라며 “학부모는 자사고 같은 ‘좋은 고교’에 가지 못하는 단계에서 대입이 결판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고 집단 행동까지 불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핵심은 교육청과 자사고 양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며 “각 교육주체, 즉 인근 일반고와 지역주민 등 관계자들이 함께 논의에 참여해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 방식처럼 설문조사(공교육 영향평가) 정도로 급하게 진행돼선 곤란하다. 교육감은 물론이고 구청장들까지 나서 민의를 수렴해야 할 중요 교육 현안”이라고 역설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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