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사이, 경조사 체면치레
뿌린대로 거두리라
낸 돈 받은 돈 엑셀파일 꼼꼼 정리
아파서 못 간다해놓고…
무심코 올린 등산 사진 아뿔싸!
봉투 속 뜻밖의 편지
축하해…힘내…돈으로 못 살 감동
[ 김동현/안정락/황정수/김은정/강현우 기자 ]
“결혼식 청첩장요? 세금 명세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요즘 지인들의 결혼식 연락을 받으면 불편함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평소에 연락 한 번 없던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반갑기는커녕 가슴이 철렁한 기분마저 든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대학 시절 여자 동기가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차 한 잔’을 사주며 청첩장을 내밀더군요. 결국 가긴 했지만 그 애가 제 결혼식에 올까 싶기도 하고 옛정으로만 결혼식에 가려고 하니 좀 억울한 생각도 들고…. 맘이 편하지 않았어요.”
직장 동료와 지인들의 경조사 때문에 속으로 고민하는 직장인이 많다. 주변 사람의 애경사를 함께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는 김 과장도 많지만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혹은 서먹한 관계가 되기 싫어서 경조사에 간다는 이 대리도 있다.
○“결혼식 꼭 가야 할까요?”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는 최근 난처한 경험을 했다. 한 선배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후배들을 끌어와 ‘△△부서에 있는 OOO 선배 누나가 돌아가셨다’며 반강제적으로 참석을 종용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경조사 알리미’ 기능을 한 셈이다.
정 대리는 조사를 당한 OOO 선배와는 평소 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단체방에서 공지를 받고 나니 별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직접 연락 온 거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장례식에 가게 되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장례식장에서 멀뚱멀뚱 있으려니 뭐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마냥 뺄 수만도 없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안모 대리는 싫어하는 선배 결혼식에 가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렀다. 주말마다 결혼식이 있던 지난 5월 초. 그는 평소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던 부서 내 선배에게 아프다고 얘기하고 축의금만 보냈다. 하지만 무심코 결혼식 날 페이스북에 ‘북한산 등산’ 인증 사진을 올렸던 것이 화근이 됐다. 안 대리는 “페이스북 친구였던 선배가 결혼 후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며 핀잔을 주는데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의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김모 주임은 한때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애정남(애매한 것 정해주는 남자)을 부르고 싶은 지경이다. 최근 김 주임의 회사는 일부 사업 부문을 확장하면서 경력 직원을 대거 뽑았다. 실무 경험 있는 직원 위주로 뽑다 보니 결혼 적령기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많이 생겼다. ‘청첩장은 몇 개월 이상 된 동료에게만 줘야 한다’는 기준이라도 있었으면 한다는 게 김 주임의 속마음이다. “제 옆 부서 직원이 다음주 결혼식이라는데 고민입니다. 사실 얼굴 본 지는 보름도 채 안 됐고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안 가자니 계속 얼굴을 보게 생겼고, 가자니 서먹하고 정말 난감합니다.”
○경조사에도 통하는 ‘갑을’ 관계
서울 여의도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는 한모 대리에게 대형 보험회사의 자산운용 담당자들은 절대 ‘갑’이다. 보험사는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자체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운용한다. 그러나 일부는 자산운용사에 맡기기도 한다.
자산운용사에 다니는 한 대리에게는 고객인 보험회사 담당 직원과 어떻게든 돈독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올초 최 차장이 장인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뛰어갔다. 직계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리를 안내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해 도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평소 지병이 있던 최 차장의 아버지가 쓰러졌다. 부친상이라는 말에 한 대리는 다음날 연차까지 내면서 다시 최 차장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지난주 최 차장의 외조모상 소식까지 접하게 됐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한 사람에게 상이 계속 생기니 부담스럽네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제 입장에서는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형 유통업체에 다녔던 박모 과장은 노골적인 ‘축의금 챙기기’로 사내 안팎에서 빈축을 샀다. 두 달 전 결혼한 그는 사내 동료들은 물론 업무상 얽혀 있는 각종 협력업체 직원에게 모두 청첩장을 보냈다. 이른바 ‘갑’의 지위에 있는 유통업체 바이어인 박 과장이기에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성의 표시를 했다. 그런데 결혼식 직후 박 과장은 “아내와 함께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진학하기로 했다”며 회사에 사표를 내고 자취를 감췄다. 협력업체 김모 대리는 “토요일 여행 계획까지 취소하고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축의금이나 바짝 챙겨 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 씁쓸하다”고 하소연했다.
○마음을 담은 손편지 전달
스마트폰 사용이 활성화된 이후 청첩장을 모바일로 대체하는 일도 많아졌다. 강모 대리는 연락이 뜸하던 대학 동기들이 카톡으로 툭툭 던지는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영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우편까진 아니더라도 직접 전화해서 결혼식에 와 달라고 하는 게 예의 아닌가요? 툭 던져놓고 오라는 게 영….” 강 대리는 이 문제에 대해 입사 동기에게 말했다가 최근 명쾌한 답을 얻었다고 한다. 카톡으로 통보받았으면 카톡으로만 축하해 주면 된다는 게 입사 동기인 김 대리의 주장. 이후 강 대리는 요즘 카톡만 보내는 예비 새신랑·신부들에겐 네 글자만 보낸다. ‘축하한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안모 대리도 각종 축의금이나 부의금에 ‘기브 앤드 테이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직장인이다. 그는 자신의 조모상이나 누나 결혼식에 와 줬던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 얼마씩 냈는지 일일이 체크해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어 뒀다. 이후 주변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엑셀표를 보면서 봉투에 넣을 액수를 결정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김모 사원은 경조사 봉투에 항상 글을 적어 넣는다. 친한 사람이면 봉투 안에 편지를 쓰기도 한다. 진심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김 대리는 사회생활에서 이 같은 원칙을 지켜왔다. 주변 반응도 좋은 편이다. 손편지를 주고받는 게 흔치 않아서인지 일부 지인은 “편지 잘 읽었고, 감동받았다”는 말을 직접 전하기도 한다.
김동현/안정락/황정수/김은정/강현우/임현우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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