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가 보는 저출산
아버지만큼 잘살기 어려워
TV속 '완벽 부모' 자신없어
[ 고은이 기자 ]
“아이를 안 낳네? 그럼 양육비를 줘야겠다. 결혼을 안 하네? 그럼 결혼지원비를 줘야겠다. 이런 식의 대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4차 인구포럼-세대 간 소통’에서 20~30대 젊은이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 대책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한 채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것.
이날 발표자로 나선 전예지 씨(20대 후반·대학 조교)는 지금 청년층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둔 채 당장의 출산을 강요하는 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주말 저녁 TV를 틀면 아이들과 여행을 가는 연예인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주중에 야근하며 일하다 주말에도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TV 속 슈퍼맨은 현실에 없다”며 “이런 사회의 흐름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취직도 안되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TV 속 따뜻한 부모의 역할까지 잘 해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발표자 권순범 씨(30대 초반·대학원생)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단순히 ‘자녀를 적게 낳는 게 문제’라고 접근하기보다는 ‘현재 자녀라는 존재가 젊은 세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나’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김석준 씨(34)는 “‘내가 우리 아버지만큼 잘살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떤 친구들은 능력도 안되면서 자식을 일찍 낳아 힘든 거라고 한다. 매달 지원받는 보육료도 고맙지만 높은 집값이나 낮은 고용안정성 같은 근본적인 부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현실 가능성을 운운하며 거부하는 것은 정책의지의 문제라고도 꼬집었다.
30대 초반 회사원 임현정 씨는 방송매체 등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다산여성에 대한 예찬, 저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얘기 등이 오히려 출산율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짤 때 여성을 국가경쟁력을 위한 도구적 인력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며 “저출산은 민족적이고 애국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꾼이 부족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언설에 움직일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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