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복날 뭐 먹지?

입력 2014-07-17 20:32
수정 2014-07-18 05:42
‘한 주발 향그런 차 조그마한 얼음 띄워/ 마셔보니 참으로 무더위를 씻겠네/ 한가하게 죽침 베고 단잠에 막 드는데/ 손님 와 문 두드리니 백번인들 대답 않네.’ 서거정의 ‘삼복(三伏)’이라는 시다. 폭염 속에 얼음차로 무더위를 씻고 막 낮잠에 드는 순간의 달콤함이 정겹고, 빙긋 웃음까지 짓게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삼복 때 고관들에게 빙표(氷票)를 나눠줘 장빙고(藏氷庫)에서 얼음을 타 가게 했다고 한다.

예부터 복날 음식으로 인기를 끈 것은 복죽(伏粥)과 계삼탕(鷄蔘湯), 개장국, 민어탕, 장어탕 등이었다. 닭칼국수도 삼복메뉴였다. 복죽은 붉은 팥과 찹쌀로 만든 죽이고 계삼탕은 지금의 삼계탕이다. 더위를 이기려고 피가 피부로 모이는 바람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입맛이 없을 때 고단백, 저지방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영양도 만점이다.

근대에 와서 보신탕으로 불린 개장국은 예전부터 동서양이 다 즐겼다. 로마 사람들은 가장 밝은 별인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삼복 기간에 해와 함께 뜨고지는 걸 보고 이 별과 태양의 열기가 겹쳐 더욱 덥다고 여겼다. 그래서 복날을 ‘개의 날(dog’s day)’이라 하고 이날 개를 잡아 제사지내며 별을 달랬다. 우리 ‘농가월령가’ 8월령도 며느리 친정 나들이에 ‘개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며 사돈집에 보낼 귀한 음식으로 쳤다. 복(伏)이 사람 인(人)변에 개 견(犬)자인 것도 이런 까닭이다.

민어찜·탕과 장어백숙, 잉어를 넣은 용봉탕, 산미꾸라지와 두부로 만든 도랑탕은 부잣집에서 먹었다. 복날 음식은 이열치열의 원리로 땀을 내는 게 대부분이지만 시원한 냉탕 요리도 제법 많다. 참깨 껍질을 벗기고 곱게 갈아 체에 거른 국물에 영계백숙국을 섞어 차게 먹는 임자탕(荏子湯)이 대표적이다. 미역초무침과 냉면도 훌륭한 복달임이다. 냉면은 고혈압과 동맥경화, 변비를 막아준다. 식초는 녹말이나 육류를 먹을 때 생기는 유산을 분해해 피로회복을 돕고 세균 번식을 막는다. 찬 음식인 냉면에 따뜻한 성분의 겨자를 곁들인 것도 놀라운 지혜다.

그러나 한두 가지 보양식이 건강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각종 영양소가 든 식품을 골고루 먹는 게 가장 좋다.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물도 충분히 마셔야 한다. ‘더위만 빼고 골고루 다 먹자’는 말이 딱이다. 최남선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 해서 복날은 더위를 꺾는 날이라고 했다. 무더위를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정복하자는 뜻이리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