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총장 선출 갈등…직선제의 향수?

입력 2014-07-13 21:22
인사이드 스토리

서울대 1991년 총장 직선제 시작…파벌형성·인기영합 등 폐단 노출
올들어 첫 '간선제'로 뽑았지만 교수協 "우리 의사 반영안돼" 반발

2012년 국공립대 직선제 폐지…최근 '공모 통한 임명제' 확산


[ 오형주 기자 ]
서울대가 첫 간선제 총장 선출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사회가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오세정 교수 대신 2위를 한 성낙인 교수를 차기 총장으로 선출하자 교수협의회 등이 강력 반발하면서 교수사회가 사분오열된 것이다. 1987년 이후 27년 만에 비상총회 소집까지 눈앞에 둔 상황이었지만 오 교수가 이사회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고비는 넘겼다.

서울대는 이번 총장 선출에서 12명의 총장 후보를 5명→3명→1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거쳤다. 3명까지 줄이는 작업은 총추위 몫이었다. 이론이 없었다. 갈등의 단초는 최종 총장 후보 1명을 확정한 이사회 결정이었다. 교수들은 비민주성을 문제로 꼽았다. 일각에서는 과거 직선제 총장 선출에 대한 교수들의 강한 향수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한다.

서울대가 직선제로 총장을 뽑기 시작한 건 1991년부터다. 1987년 6·29선언 뒤 불기 시작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인 임명제 대신 직선제를 도입한 것이다. 서울대는 1991년 김종운 총장을 직선제로 뽑았다. 총장 직선제는 모든 국공립대와 사립대 중 44%가 직선제를 채택한 1996년 정점에 달했다. 직선제를 통해 교수사회의 지지를 받은 총장들은 종종 인기를 등에 업고 정부로 진출했다. 이수성·정운찬 총장이 국무총리로 발탁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직선제의 폐단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를 얻고 봐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다. 선거 과정에서 한 후보는 교수 수십명에게 사과상자를 돌렸다. 어떤 후보는 특급호텔에 선거본부를 차리고 호텔 식당에 교수들을 초대했다. 술자리는 다반사였다. 총장 선거는 단과대 간의 싸움터로 전락했다. 정치권의 행태와 다를 게 없는 매표행위였다.

1996년 초 이수성 총장이 취임 9개월 만에 총리로 발탁된 뒤 골프금지령 속에서 의대교수들과 골프를 치려 했던 것도 ‘보은 차원’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물론 골프는 취소됐지만 “총장이 되려면 의대와 공대를 잡아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이었다.

직선제는 파벌을 만드는 분파주의로 나타났다. 총장을 뽑고 나면 교수사회가 사분오열됐다. 교수들 스스로 “교수인 게 부끄럽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결국 직선제가 파벌을 조장해 대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는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며 대학도 경쟁력 향상을 위해 변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서울대는 2011년 서울대법인화에 따라 총추위와 이사회를 통한 간선제를 채택했다.

다른 대학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1990년 직선제를 채택한 고려대는 재단과 교수회 간 힘겨루기로 총장 선출이 지연돼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2002년과 2007년 두 차례나 구원투수로 나서 총장 서리를 지냈다. 2010년 간선제를 도입,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로 총추위 평가에서 1위를 한 김병철 총장을 선출했다. 1988년 직선제를 도입한 연세대는 2011년 간선제로 정갑영 총장을 선임했다. 2012년에는 교육부의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 따라 모든 국공립대가 직선제를 폐지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조선대 등 4곳 정도만 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 대학이 간선제다. 하버드대는 교황청의 ‘콘클라베(Conclave)’처럼 소수로 구성된 총장탐색위원회가 수백명의 총장 후보를 비공개로 심사해 선임한다. 반면 독일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직선제적 요소가 강하다. 올해 초 직선제 관례를 깨고 차기 총장을 국제공모로 뽑겠다고 공언한 일본 교토대는 결국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직선제를 통해 ‘고릴라 교수’로 유명한 야마기와 주이치를 총장으로 선출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최고경영자(CEO)형 총장’ 중 다수가 공모를 거쳐 임명제로 선임됐다. 2005년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고문을 총장으로 선임한 서강대, 2007년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총장으로 선임한 동국대 등이 임명제로 좋은 결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