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나야 판매도 '물' 만날 텐데…제습기 업계, 장마 실종에 한숨만 '푹푹'

입력 2014-07-11 21:34
무덥고 습한 날씨 전망…제습기 업체 40곳으로 늘어
장마 늦어지며 판매 부진…공장 절반이상 놀리는 곳도
위니아만도 등 판촉 총력전


[ 남윤선 기자 ]
독일이 월드컵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7 대 1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대파한 지난 9일. 전자업계는 월드컵보다 일기예보를 더욱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관심사는 태풍 너구리가 한국에 상륙할지 여부였다. 이날 오후 너구리가 일본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자 시민들은 안도했지만 전자회사 영업사원들은 아쉬운 마음에 가슴을 쳤다. 태풍이 오고 비가 쏟아져야 에어컨, 제습기 판매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장마가 20일 넘게 늦어지고 있는 데다 태풍까지 비켜갔다”며 “지난해 잔뜩 증산해 놓은 공장이 놀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비켜간 너구리에 ‘한숨’

에어컨·제습기를 만드는 업체는 2012년 ‘물량부족 악몽’을 겪은 경험이 있다. 당시 여름 무더위가 늦게 올 것으로 예상되자 각 업체들이 물량을 줄였는데 7월 말부터 갑작스런 장기 열대야가 찾아왔다. 소비자들은 매장으로 몰려들었지만 팔 물량이 없었다. 그해 국내에서 팔린 에어컨은 약 90만대였다.

2013년 업체들은 물량을 대폭 늘렸다. 전 해에 에어컨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침 날씨가 습해지면서 제습기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2013년 에어컨, 제습기 판매량은 전년 대비 각각 2배,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도 업체들의 기대는 컸다.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서였다. 지난해 이상의 시장을 기대하고 생산 물량을 크게 늘렸다. 지난해 25개 정도였던 제습기 생산 업체는 올해 40개 안팎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고 있다. 덥긴 하지만 비가 안 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엔 오는 21일까지 비소식이 없다. 장마전선도 25일이면 소멸될 전망이다.

비가 오지 않자 제습기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200만대 이상을 기대했던 제습기 시장은 100만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에어컨도 전작보다 덜 팔릴 전망이다.

한 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에어컨 신모델용 금형 개발비만 100억원 이상이 들고, 유명 배우를 고용한 프로모션 비용도 여름 한철 100억원가량 든다”며 “올해 ‘대박’을 기대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놨는데 공장을 절반도 못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푸짐한 경품 내세워 마케팅 공세

위기에 몰린 업체들은 공격적인 프로모션에 나서고 있다. 할인, 끼워팔기, 경품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위니아만도는 27일까지 제습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총 1000만원 상당의 경품 행사를 연다. 100만원짜리 상품권, 김치냉장고 등 제습기보다 비싼 경품도 있다. 삼성전자는 스탠드형 에어컨 전 제품에 무이자 할부 옵션을 부여했고, 신제품을 사면 모델에 따라 냉각기, 제습기, 청소기 등 다양한 제품을 함께 준다.

LG전자는 에어컨 구매 고객에게 제습기를 증정하고, 추첨을 통해 모델인 체조선수 손연재의 갈라쇼 티켓 등도 선물로 준다. 동부대우전자는 동부그룹 직원과 지인들에게 제습기를 50% 가까이 할인 판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최적의 쇼핑 시즌이 열린 셈”이라며 “한국 기후가 점점 고온다습해지는 건 분명한 만큼 미리 구매해 놓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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