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익명소설' 출간 눈길
참여작가 이름 1년 후 공개
[ 박상익 기자 ]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의 1975년 수상자는 에밀 아자르라는 무명작가였다. 하지만 그 이름은 가짜였고 프랑스의 유명 작가 로맹 가리가 1980년 숨진 뒤 그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공쿠르상이지만 그는 익명소설로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됐다.
익명 사용은 작가가 흔히 쓰는 방식이 아니지만 자신이 그간 써왔던 문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나 기법을 도입할 수 있는 기회다. 새로 출간된 단편집《익명소설》(은행나무)은 한국의 젊은 작가 10인이 기성 문단에 던지는 수수께끼다.
소설 속 작가들의 이름은 M·V·H 등 영문자로만 표시돼 있다. 책을 기획한 작가 두 명 외에는 누가 참여했는지 작가들도 모른다. 소설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출신 학교, 등단 매체, 수상 이력 같은 작가 소개는 없다. 오로지 글만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장치다.
10개의 단편은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았다. 첫 번째 작품인 ‘물고기자리’는 육체적 욕망과 신화, 전생의 이미지를 결합한 새로운 에로티시즘을, ‘해피 쿠키 이어’는 한국 의과대학에 온 아랍 학생의 유학기를 위트 있게 그렸다. ‘18인의 노인들’은 노벨문학상이 사실은 인간 흉내를 낸 토끼들의 뽑기였다는 ‘위험한’ 설정으로 노벨상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문학엔 등을 돌린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꼰다.
작가라면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으로 금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책을 기획한 작가 두 명은 이구동성으로 “등단한 뒤 자신의 작품이 어떤 경향성을 지니게 되면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며 “마음대로 쓰라는 원고 청탁을 받아도 매체 성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기쁨 외에 작가가 누군지 상상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 참여 작가들의 명단은 작가 동의 하에 1년 뒤 밝힐 예정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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