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마피아’ 납품비리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김광재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투신자살로 입을 닫은 탓이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직업 공무원의 꽃이라는 1급까지 지낸 국가공단 CEO가 50대 한창 나이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20일 전에는 이 공단의 부장급 간부가 수뢰수사 도중에 자살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철(鐵)피아들의 그렇고 그런 구태와 구습이 아니다. 때 되면 오가기도 했을 상납형 떡값 관행이나 끼리끼리의 봐주고 챙기기 문화보다 더 큰 거악(巨惡)이 엿보인다.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마지막 순간 김씨는 최후의 양심처럼 이런 유서를 남겼다. 잘못된 길이란 무엇이었고, 유혹은 또 무엇이었을까. 드러난 대로라면 고속철도의 레일을 침목에 고정시키는 체결장치 생산업체인 A사는 정치권에 몸담았던 권모씨를 고문으로 내세워 억대의 로비자금을 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에게도 3000만원이 간 걸로 돼 있다. 권씨는 김씨의 대학후배로 옛 한나라당 실력자 K씨의 특보 출신이다. 유서 내용으로 볼 때 로비자금의 종착점이 김씨나 권씨 선이 아니라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수뢰고리는 수사가 매듭지어지면 대충이라도 드러날 것이다. 1급 관료를 거쳐 공단 대표까지 지낸 인사가 어떤 명목으로 정치자금이 필요했겠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평소 정계 진출을 희망했고, 정치권 유력 인사들로부터 특정 업체를 도와주라는 압력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정치로의 유혹’ 때문에 스스로도 돈을 받았다.
지난 지방선거 때 억대의 공천수뢰 스캔들로 유승우 의원 부인이 구속된 것이나 세월호 수사에서 불거진 박상은 의원 주변의 수억원 현찰다발 같은 일은 김씨 케이스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일까.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된 시의원 김형식 씨는 왜 A사의 로비대상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나. 로비에는 여야도 없고, 이런 유형의 의혹은 모두 국회의 해당 상임위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보편적 법칙이다. 규제야말로 한국 정치권의 먹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