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소위 ‘ABC’(Argentina, Brazil, Chile) 경제에 모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한다. 이미 1차 부도가 난 아르헨티나는 이달 말 디폴트(채무불이행) 여부가 확정된다. 월드컵에 가려져 있지만 잇단 파업 등으로 브라질 경제도 엉망이다. 이번엔 건실한 성장세를 보였던 칠레 경제가 흔들린다는 외신보도다. 한결같이 포퓰리즘 정책과 분배의 덫에 빠진 결과다.
남미 대륙의 경제 모범국가로 꼽혔던 칠레까지 분배정책 때문에 성장률이 곤두박질친다는 소식은 특히 시사점이 크다. 1분기 칠레의 성장률은 2.6%. 지난해 동기 4.9%와 비교하면 절반수준으로 꺾였다. GDP의 20%를 차지하는 구리의 수요감소도 큰 요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지난 3월 출범한 좌파 바첼레트 정권의 정책이다.
바첼레트 정권이 성장보다 분배에 중심을 두면서 투자심리가 급랭한다는 것이다. 무상교육 확대, 법인세율 20%에서 25%로 인상, 외국투자자 세제혜택 축소 같은 정책들이 제시됐다. 선거 때부터 ‘불평등 해소’를 외쳐온 바첼레트였다. 경기침체는 서막일 뿐이다. 5월 소비자 물가가 4.7% 뛰면서 인플레이션 공포도 시작했다. 페소화 가치는 1년 전에 비해 10% 급락했다. 칠레의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는 근래 아르헨티나가 겪는 고통 그대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S&P의 최저 국가등급인 CCC-로 추락했다. 기술적으로는 6월 말로 이미 부도였다. 채권단과의 협상이 7일부터 시작되지만 비관적이다.
아르헨티나에는 1940~50년대 복지확대, 친노조 정책 등의 페론주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포퓰리즘의 악영향은 길고 모질다. 브라질에서도 최근까지 매일 수십건의 파업이 줄을 이었다. 공립학교·공공병원·시내버스에서부터 경찰까지 매일 수십건씩이었다고 코트라 현지사무소가 전해왔다. 기업신뢰지수는 2008년 이후 최저치다. 오는 10월 대선에서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브라질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포퓰리즘, 조합주의(corporatism), 분배정책 등 온갖 인기영합적 사회주의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남미 경제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