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공직을 돌고도는 '돌피아'

입력 2014-07-01 20:49
수정 2014-07-02 05:45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관피아 모피아 세피아 법피아 감피아…. 참으로 온갖 피아들이다. 한번 잡은 공직의 연과 특권을 퇴직 후에도 두고두고 누려온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까지 나서 ‘관피아 척결’을 외칠 정도니 그 길고도 깊은 밥그릇이 과연 얼마나 사라질지 두고 볼 일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종 피아들도 있다. 바로 이런저런 공직을 돌고 도는 ‘돌피아’다. 가장 대표적인 돌피아는 고위공무원-국회의원-광역단체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완주하는 이들이다. 법조인이나 직업 관료를 지내다 국회에 입성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금뱃지가 떨어지면 도지사나 광역시장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방자치가 자리 잡기 전 공직-국회의원 사이를 오간 이는 많았어도 광역단체장까지 섭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비중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장관→의원→광역단체장으로

6·4 지방선거 당선자 면면을 보면 얼마나 돌피아들이 득세했는지 잘 알 수 있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공무원-국회의원-단체장’의 소위 삼각 풍차 돌리기를 완성한 이만 6명이다. 3분의 1이 넘는다. ‘국회의원-단체장’, ‘공무원-단체장’ 코스를 밟은 사람이 각각 4명이고 ‘언론인-국회의원-단체장’은 2명이다.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지낸 적이 없는, 순수 민간인은 윤장현 광주시장 한 사람뿐이다. 당선자만 놓고 봐서 그렇지 낙선자나 당내 광역단체장 후보 결정과정에서 탈락한 사람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전직 공무원 또는 국회의원이 단체장 자리를 기웃거린다.

물론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출신이 단체장이 된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피아처럼 직접 이권을 따라 움직인 것도 아니다. 개중엔 풍부한 행정이나 국정 경험을 갖춘 유능한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이들은 관피아와는 달리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위 명망가 반열에 오른 이들이 ‘노른자위’ 자리를 섭렵하며 돌고 도는 것이 썩 좋게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안되자 이번엔 재·보선에 기웃거리는 것도 그래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두고두고 권력과 영화를 누리겠다는 자리 욕심이 관피아보다 결코 덜한 것 같지도 않다.

정치과잉과 자리욕심의 합작품

엘리트라고 할 만한 국가 인재풀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그럴 수도 있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민간의 전문성을 관료나 정치인이 따라잡기 힘든 세상이다. 굳이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공직을 쇼핑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 특히 이해하기 힘든 것은 멀쩡하게 공직에 있던 이가 선거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던지고 나가는 일이다. 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간 유정복 인천시장이 그랬고 재·보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이정현 전 홍보수석도 마찬가지다. 공직이 그렇게 하찮은가.

근본적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정치과잉에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 아래 얼굴이 알려진 명망가를 내세우기 일쑤다. 당사자 역시 선거직에 나가기 위해 장관직쯤은 쉽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임명권자도 이를 당연하다 생각하고 일반 국민들조차 큰 문제 제기를 않는다. 바야흐로 돌피아 세상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