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20대,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한…

입력 2014-07-01 20:47
수정 2014-07-02 05:45
"아프다" 어리광이 전부 아닌 청춘들
도전·긍정의 에너지도 가득 차 있어
스스로 해법 찾도록 놔두는 게 좋아

함인희 < 사회학 이화여대 교수 hih@ewha.ac.kr >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생애주기(life course)란 개념이 등장한 이후,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네 생애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20대 중후반의 ‘초기 성인기’라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개인 차원에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등과 관련해 정체성의 핵심이 형성되는 동시에, 향후 50여년에 걸쳐 전개될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20대를 두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포 중인 담론을 들여다보면 88만원 비정규직 세대에서부터, 아프니까 청춘인 세대를 거쳐,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임은 진정 안타까운 일이란 생각이다. 세계를 집어삼키고도 허기를 느낄 만큼 허세라고 해도 좋을 열정이 넘치는 시기였던 적도 있건만, 이젠 욕망의 덧없음을 깨닫곤 모든 야망을 내려놓은 초식남이나 프리터족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지 않은가.

하기야 개인의 삶이 사회적 진공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음은 명백한 터. 그러고 보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 두 손 들어 열광했던 예전 20대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격하게 공감하는 오늘의 20대 사이엔 생애주기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로서의 20대 의미를 둘러싸고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데 최근 25~29세 젊은이들을 상대로 이들의 인생관 가치관 결혼관 등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 이들은 88만원 비정규직에 절망하는 세대도 아니요,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하는 아픈 청춘도 아님은 물론, 3포 세대는 더더욱 과장된 이미지란 점이었다. 실제로 이들을 한마디로 규정하기엔 내부의 이질성이 두드러졌고, 스펙트럼 또한 매우 다채롭고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례로 이들에게 자신의 현재 삶을 상징하는 단어 두 가지를 순서대로 선택하도록 한 결과 1순위는 ‘불안’이 40.2%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긴 했으나, 2순위는 ‘도전’이 39.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혼란 혼돈 갈등을 느끼지 않을 도리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비전을 갖고자 노력하는 기특한(?) 세대임을 새삼 확인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의 20대가 생애주기를 지나오는 동안 이들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라는 우울한 진단이 1위를 차지했고, 양극화 및 빈부격차 확대라는 엄혹한 현실인식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장이 3위로 나타나면서 예전 20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사회정치적 파워의 가능성을 실감하고 있음을 엿보게 해주기도 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절망하지만은 않는 20대의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더욱 흥미를 끄는 건 이들의 모순된 태도 속에 담긴 솔직함인 듯하다.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나는 부모 세대의 권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데 동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생의 멘토가 있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 중 부모님을 지목한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음은 진정 흥미롭기까지 하다.

결국 오늘의 20대에 대해 하나의 잣대로 섣부른 진단을 시도함은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사회와 부모 세대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은 그들의 잠재력을 믿고 가능하다면 기다려주는 일일 듯하다. 그들도 자신의 인생을 매우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자. 다만 부모 세대가 이들 20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들 스스로 자신의 해법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 지나친 힐링의 피로감에 젖지 않도록 ‘내버려 두기’도 이들에겐 약이 될 듯하다.

함인희 < 사회학 이화여대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