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지난 6월20일 국회 대정부 질의. 이미 50여일 전에 사직서를 제출한 시한부 총리를 상대로 한 ‘세월호’ 참사 관련 야당 의원들의 질의는 맥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 마지막 질의자로 나선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 총리를 불러 세워놓고 “맥빠진 질의가 될 수도 있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차원이니 성의있게 답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시 총리에 대한 질의는 호통과 질타보다는 참사 유가족 및 인근 피해어민에 대한 후속 대책을 주문하는 당부가 주를 이뤘다.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데다 문창극 후보자가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 총리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을 것이다. 정 총리를 상대로 한 16분여 질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임 의원은 뜬금없이 “앞으로 총리를 계속 하실 것 같아요. 피해어민 보상을 끝까지 챙겨달라”고 얘기했다. ‘화들짝’ 놀란 정 총리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말라”며 “후임자가 와서 잘 할 것이다”라고 얼버무렸다.
임 의원과 정 총리의 ‘선문답’ 같은 짧은 대화가 현실이 되는 데는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후보자가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고 중도낙마하자 정 총리 유임을 전격 발표했다. 문 후보의 자진사퇴후 모든 언론은 세번째 총리 후보가 누가 될지를 놓고 온갖 전망 기사를 쏟아냈다. 단 1곳의 언론도 정 총리 유임을 예측하기는 고사하고 가능성조차 언급하지 못했다. 그 만큼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상식을 깬 파격인사란 방증이다.
새정치연합은 즉각 ‘국민을 기만한 오기인사의 극치’란 논평을 냈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미 사표가 수리되었고, 두 명의 후보자를 추천하기까지 해서 물러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오기인사의 극치”라며 “돌려막기 하다가 안 되니까 틀어막기 하는 격”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렇다면 임 의원은 정 총리의 유임을 예측한 것일까. 직접 확인해 봤다. 임 의원은 “뻔한 것 아니예요?"라고 답했다. 재차 물으니 “왜 이래. 잘 알면서"라고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임 의원도 정 총리의 유임까지는 예상 못한 것 같다.
그가 “안대희에 이어 문창극이도 인사청문회에도 가지 못할 게 뻔한데...”라고 말한 것을 봐서는 시한부 총리직이 연장될 것이란 의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본의가 무엇이었던 간에 정 총리 유임 발표에 임 의원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기자에게는 임 의원 못지 않게 가슴이 서늘해졌을 만한 사람이 한 명 더 떠오른다. 문 총리 후보자의 야당측 청문회 위원장을 맡아 그의 식민사관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이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지난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물러갈 정홍원 총리에게 질문하지 말라는 유인태 의원의 조크에 나는 ‘정 총리는 관운이 좋아 3년반 총리 더 할 거야’라고 말했다. 말이 씨가 되었군요”라는 글을 남겼다.
박 의원은 문 총리후보가 지명된 직후 정치부 기자들과 접촉을 늘려가며 총리후보 ‘디스(dis) 마케팅’에 열중했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문 후보는 역대 최악"이라며 “문 후보보다는 안대희가 백배 낫다"는 취지의 말을 많이 했다.
이어 정 총리에 대한 평가도 후했다. 그는 “정 총리는 내공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말도 했다. 박 의원의 이 같은 인물평은 다분히 후임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수단이었지, 100%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안과 문 두 후보의 낙마 선봉에 섰던 박 의원이 정 총리 유임에 대해선 ‘공격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천하의 박지원’을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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