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파생시장의 '라스트 모히칸'

입력 2014-06-25 20:39
수정 2014-06-26 05:25
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


14명. 61개 증권사에서 현재 ‘파생 시장 담당’이라는 명함을 들고 있는 애널리스트 숫자다. 그나마 이들 중 상당수는 본업인 파생상품 시장 분석 외에 대체투자 같은 가욋일을 병행하면서 일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구나 파생상품 담당 애널리스트는 고용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다. 투자전략 담당이나 업종 애널리스트는 이직이 쉽지만, 요즘 파생 전문가를 찾는 증권사는 별로 없다. 중견 증권사의 한 임원은 “얼마 전까지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손꼽히던 파생 전문가가 퇴출된 뒤에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의도를 배회하는 것을 보곤 가슴이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규제에 묶인 파생시장의 침몰

증권가에서 파생전문가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파생상품 시장 위축 때문이다. 거래량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유지하던 한국 파생상품 시장은 2012년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옵션 거래 기본단위(승수)인상 등 각종 규제가 도입되면서 2년도 안돼 세계 9위로 추락했다. 2012년 전 세계 파생상품 거래 총량 감소분의 9%, 주가지수옵션 거래 총량 상실분의 30%가 한국 파생 시장 거래 건수 감소에 기인했을 정도다.

파생상품 시장이 쪼그라들고 소수의 종사자가 퇴출되는 게 자본시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탕’을 노린 ‘노름꾼’만 몰려드는 백해무익한 곳이 파생상품 시장이라는 규제당국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 전제를 받아들여도 정부가 왜 ‘투기꾼이 판돈을 잃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문제는 파생상품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현물 시장 거래도 위축된다는 데 있다. 증권업계 분석에 따르면 파생상품 시장 거래 축소로 현물 시장의 헤지 수요도 급감해 결과적으로 유가증권 시장의 주식거래대금이 규제 도입 이전에 비해 매월 20조원 가까이 줄었다.

‘발전 아닌 無사고’가 정책목표?

정부 규제로 자본시장이 고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주 금융위원회는 ‘파생상품 시장 발전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업계에선 ‘숨이 턱 막힌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부가 규제완화가 아니라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는 전형적인 공무원식 처방을 내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투자자에게 80시간의 교육을 이수토록 하고, 3000만원 이상을 예탁해야 가장 단순한 선물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장 진입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아마도 모든 규제는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의가 시장을 죽이면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생긴다. 130여년 전 영국이 그랬다. 1882년 산업혁명의 최전선을 달리던 영국 정부는 “전력은 공공재이고 전기가 화재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전기조명법’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민간 전기사업자는 사업을 시작한 뒤 21년이 지나면 전력생산권을 공공회사에 양도하도록 강제했다. 영국의 전력산업이 미국과 독일에 추월당한 이유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정부대책을 접한 뒤 “시장이 죽건 말건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게 정책당국의 목표인 것 같다”고 했다. 규제는 늘고 시장은 위축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배가 이렇게 자꾸 산으로만 올라가면 어찌될지 마음이 무겁다.

김동욱 증권부 차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