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쿠르드인

입력 2014-06-25 20:33
수정 2014-06-26 05:29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쿠르드인들의 속담에 “낙타는 동물이 아니고 아랍인은 인간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아랍인에 대한 이들의 증오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아랍인들 사이에선 “세상에는 못된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쥐와 메뚜기와 쿠르드인들”이라는 속담이 회자된다. 아랍인과 쿠르드인의 뿌리 깊은 갈등은 실로 역사적이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인종도 물론 다르다. 쿠르드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이란과 이라크를 잇는 자그로스 산맥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이라크 북부와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민족 정체성은 대단하다. 3500만명 중 절반가량은 터키에 거주한다. 이라크에는 400만명가량이 살고 있다.

이들은 10세기 메디아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2세기 아이유브 왕조 시절에는 나름대로 국가의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16세기 오스만투르크제국에 복속된 뒤로는 그야말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유랑하는 민족의 대명사가 됐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이후 독립할 기회가 있었지만 주위 열강들의 힘겨루기로 아직도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들어 이들의 독립투쟁은 눈물겹다. 게릴라 조직으로 무장한 쿠르드인들은 곳곳에서 투쟁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중 쿠르드인들이 이란에 협력한다며 화학무기까지 쓰면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때 쿠르드인 수십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쿠르드 난민이라는 단어를 신문기사에 자주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 쿠르드 자치정부는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출범해 기틀을 쌓았다. 처음 자치정부가 세워졌을 때 한국 자이툰 부대가 4년 이상 평화재건 임무를 맡기도 했다.

최근 들어 쿠르드 자치정부가 이슬람 과격파 무장조직의 공격으로 이라크가 다시 혼란한 와중에 독립 의지를 불태운다는 소식이다. 자체 군조직 페쉬메르가는 유전지대 키르쿠크지역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는 45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독립국가가 되면 세계 6위의 산유국으로 올라선다. 이스라엘에 석유를 수출했다는 루머도 파다하다. 이미 주도 아르빌에선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국내 연구기관에 고위공무원 교육과정 개설을 요청하는 등 한국 배우기에도 적극적이다. 쿠르드 독립이 순탄하게 이뤄질지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