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 정경애웨딩모드 사장 "제 드레스 입었던 고객, 딸 데리고 오죠"

입력 2014-06-23 21:38
지금은 女成(여성 성공)시대

이탈리아産 고급 실크로 제작
단아한 디자인 '청순함' 추구
몽골에 드레스로 재능기부


[ 조미현 기자 ]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얀다이 실크로 만든 웨딩드레스입니다. 얀다이 실크는 자연스러운 구김이 돋보이는 고급 소재죠. 몸매를 드러내는 머메이드 스타일(인어공주 몸매처럼 가슴부터 허리 다리까지 붙는 스타일)이라 청순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정경애 정경애웨딩모드 사장은 서울 청담동 본사 사무실에 진열된 웨딩드레스를 가리키며 이같이 설명했다. 정 사장의 사무실에는 그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 10여벌이 나란히 벽에 걸려 있었다. 사무실 한쪽은 작은 무대처럼 꾸며진 피팅룸이다.

◆“웨딩드레스 만드는 게 보람”

정 사장은 “수십년 전 이곳 드레스를 입은 손님이 결혼을 앞둔 딸을 데리고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며 “오랜 인연을 이어온 중요 고객(VIP)은 직접 상담한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이 웨딩드레스 디자인과 사업을 시작한 것은 23년 전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아 고교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국내 한 대학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 삼아 친구와 후배에게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해주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응용미술학과에서는 영상 디자인 등 디자인 전반을 공부할 수 있었지만 의상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는 없었다. 일본 디자인 전문학교인 ‘도쿄모드’에 입학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는 “여자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입는 옷을 평생 디자인하면 보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고급 소재와 재봉 고집

4년간 도쿄모드에서 웨딩드레스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정 사장은 5년 동안 월급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1991년 서울 압구정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웨딩드레스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는 홍보 수단이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잡지 광고를 열심히 냈지만 평생 한 번 입는 웨딩드레스를 신인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은행 대출과 부모님 도움을 받아 초기 투자금을 어렵게 마련했다”며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저가 소재를 써 가격이 저렴한 드레스를 대량 판매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지인을 통해 손님을 소개받았다. 정 사장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만족한 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최고급 소재와 질 좋은 재봉을 고집한 덕분이었다. 여기에 10여년 전부터 화려한 웨딩드레스보다 단정하고 단아한 웨딩드레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찾는 손님이 늘어났다. 이탈리아 발리 스포사 컬렉션, 이탈리아 모다 시실리아 컬렉션 등 해외 패션쇼에 초청받기도 했다.

◆몽골 등에 웨딩드레스 보내

정경애웨딩모드에는 정 사장을 포함해 디자이너만 4명이다. 10여명의 직원이 일한다. 정 사장은 “매년 50벌가량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제작한다”며 “해마다 300명이 넘는 신부의 드레스가 내 손길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15년 전부터 몽골, 캄보디아 등에 웨딩드레스를 보내고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현지 여성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는 것. 그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웨딩드레스를 선교 지역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내 이름을 건 드레스를 입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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