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강동윤 방송·드라마 음악감독(경복대 실용음악과 졸)
'대중음악' 하고싶어 클래식 위주 4년제 아닌 전문대행
"수많은 직업 중 부모가 원하는 건 몇 개뿐, 그게 문제"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전문 지식인과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한 주 내내 자신의 음악이 TV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강동윤 음악감독(41·사진)이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주말 첫 방영된 SBS 주말극 ‘끝없는 사랑’, 23일부터 전파를 타는 KBS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음악작업을 맡았다.
강 감독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흥행 보증수표 김수현 작가와 콤비로 활약하며 드라마 음악을 전담했다. 최진실의 유작 ‘장밋빛 인생’ 같은 흥행작도 그의 손을 거쳤다. ‘직장의 신’ ‘최고다 이순신’ ‘각시탈’ ‘학교 2013’ 등 인기작의 음악작업을 도맡았다.
“김수현 작가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분이잖아요. 워낙 대사를 중시해 드라마 삽입곡도 노랫말 있는 건 금기죠. 빅히트를 친 가수 더원의 ‘사랑아’란 노래가 드라마 OST란 사실 아세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말미에 잠깐 나간 게 전부인데요. 극중 감정선이 고조되다 마지막에 터지면서 노래까지 사랑받았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경복대 실용음악과(당시 생활음악과) 93학번인 강 감독은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 전문대를 택했다. 4년제대 음대는 클래식 위주였기 때문. 그는 1994년 ‘아남델타가요제’에 입상하며 인기그룹 015B에 픽업돼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김경호 4집 타이틀곡 ‘비정’을 작곡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영상음악에 대한 관심이 강 감독을 드라마 업계로 이끌었다.
“작곡은 예술이 아니라 수학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틀에 갇혀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관조하거나 여백을 채우는 드라마 음악을 만들지 않아요. 형식을 중시하기보다 극중 인물에 이입해 드라마의 감정선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악에 대한 생각처럼 직업관과 인생론도 뚜렷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그는 “국내 유학생들을 보면 튀는 학과가 없다. 무수히 많은 일 중에 부모가 원하는 직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그걸 자식에게 강요해서 그렇다” 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관점을 바꾸면 전문대는 ‘댓츠 이너프(That’s enough)’가 된다”고 강조했다.
- 작업 중인 드라마가 많다고 들었다.
“SBS 특별기획 ‘끝없는 사랑’과 KBS 미니시리즈 ‘트로트의 연인’ 음악작업을 맡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게 5년 정도 됐다. 부지런히 국내에 드나든다. 어차피 영상을 파일로 받은 뒤 음악을 입히는 방식이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 국내에 들어와선 청담동의 개인 녹음실에서 작업한다. ‘트로트의 연인’ 주연을 맡은 정은지가 OST에도 참여해 녹음하러 간다.”
- TV 틀면 만든 음악이 나오겠다. 이름을 알 만한 작품들이 있나.
“그렇다.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미니시리즈 작업을 같이 해 두 달 내내 TV에서 내 음악이 나올 때도 있었다. (웃음) 1998년부터 지금까지 드라마 50여 개의 음악을 만들었다. 최근 작품들은 ‘직장의 신’ ‘최고다 이순신’ ‘각시탈’ ‘학교 2013’ 정도. 작년엔 한국과 미국을 1년 동안 12번 왔다 갔다 했다. 거리가 먼 만큼 더 바쁘게 사는 것 같다.”
- 김수현 작가와 콤비라고 들었다. 모든 작품을 같이 하고 있다고.
“사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2002년에 ‘내 사랑 누굴까’란 음악을 맡은 적이 있다. 연출인 정을영 프로듀서가 김수현 작가와 ‘목욕탕집 남자들’ 때부터 함께 한 사이다. 그 작품을 계기로 ‘김수현 사단’ 형식의 콤비로 활동하게 됐다. 김수현 작가 하면 모두가 아는 드라마의 대가 아닌가. 큰 경험이 됐다.”
- 오래 드라마 음악을 만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쓰고 김희애 씨가 주연을 맡았던 흥행작 ‘내 남자의 여자’가 기억에 남는다. 가수 더원이 부른 ‘사랑아’란 노래가 OST였는데 히트를 쳤다. 사실 김수현 작가는 자기 작품에 가사가 있는 노래 넣는 걸 싫어한다. 대사를 워낙 중시하는 분이라 OST가 몰입을 방해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엔딩 정도에 한 번 나왔는데 그게 떴다. (웃음)”
- 더원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부른 곡으로만 알고 있었다.
“드라마가 히트를 치는데 OST는 안 나오니 아마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의 글이 워낙 좋아서 반전 효과가 컸다. 스토리가 긴장감을 높여가다 엔딩에 확 터뜨리니 몰입도가 엄청났다. 딱 그 타이밍에 노래가 나와서 반응이 컸던 것 같다. 나도 그 곡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젠 누구나 들어도 알 만한 대표곡이 됐으니까.”
- 음악감독으로서의 원칙이나 철학 같은 게 있다면.
“드라마 음악감독은 스태프의 한 사람이다. 어느정도 자기 색깔을 내지만 궁극적으로 연출이 모든 걸 완성한다. 물론 추구하는 스타일은 있다. 나는 배우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흘러가거나 메워주는 음악보다는 날을 세워 감정을 터뜨려주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드라마의 한 회차에서 연출에 가장 신경 쓴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 장면에 들어가는 음악에 공을 많이 들인다.”
- 처음부터 드라마 음악을 만들었나.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원래는 가요 쪽 일을 했다. 대학 1학년 때 당시 아남전자에서 주최한 아남델타가요제에 2인조로 출전해 입상했다. 지금의 ‘슈퍼스타K’ 격이랄까? (웃음) 입상 후 곧바로 015B에 픽업돼 대형 음반기업인 대영AV에 들어가면서 대학생 때부터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에 김경호 4집 타이틀곡인 ‘비정’을 작곡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엔 예당음향에 있었는데 소속가수인 한스밴드가 어린이드라마 OST를 부르게 됐다. 회사 내에서도 내가 평소 영상음악에 관심 있다는 것을 아니까 내게 OST 작업을 맡기면서 드라마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뭐랄까, 내 음악이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는 편이다. 가요 작업할 때부터 5분짜리 노래를 만들더라도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있다는 평이 많았다.”
- 전문대 진학을 택한 이유가 있었나.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진 못했다. (웃음) 무엇보다 난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을 하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4년제 음대는 클래식 위주였다. 그나마 전문대에 대중음악을 할 수 있는 학과들이 있었다. 원래 음악 관련 학과를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고교(서라벌고) 때 밴드에서 건반을 쳤다. 워낙 학교 축제가 유명해 가을축제 땐 교문 밖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 생각하면 그 경험이 음악을 하게 된 토대가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영상음악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 당시만 해도 대중음악 학과가 많지 않았을 텐데.
“생활음악과 같은 대중음악 관련 학과들이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였다. 커리큘럼이 지금의 실용음악과와는 조금 다르긴 한데 선택의 폭은 4년제 음대에 비해 넓었다. 그때는 전문대 대중음악 관련 학과에도 클래식 전공자들이 많이 왔다. 초창기라 교육프로그램 역시 클래식이 바탕이었지만, 클래식이 아닌 다른 길도 있었고 자유롭게 선택해 공부할 수 있는 편이었다.”
- 일하면서 전문대 꼬리표가 방해가 된 적은 없는지.
“전혀 없었다. 작곡도 수학이란 얘기를 한다. 룰(rule)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서울대 출신이 가요계도 장악해야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너무 틀에 갇히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어쨌든 대중음악을 하고 대중의 귀를 끌 사람은 끼도 있고 흥도 돋워야 한다. 놀아볼 줄 아는 사람이 놀 줄도 아는 거다. (웃음)”
- 그런 생각이 음악작업에도 반영되나.
“물론이다. 룰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감성이라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주인공의 감정선이다. 내가 만약 이 사람이라면 슬픈 감정이겠지, 또는 화난 기분이겠지, 이런 식으로 따라가 본다. 많이 감정이입 해서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관조적으로 보기보다는 드라마 속 인물로 들어가서 감정선을 따라가려고 한다.”
- 지난해 ‘자랑스런 전문대인상’을 받았다. 자부심이 남다른 듯하다.
“전문대라고 하면 4년제 못 가는 실력의 사람들이 가는 곳이란 편견이 강했다. 이젠 사회도 바뀌고 전문대의 커리큘럼이나 교육열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교육을 받는 곳 아닌가 싶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데 유학 온 학생들을 보면 80~90%가 비즈니스(경영·경제) 전공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부모가 하라니까 하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것, 이게 우리 교육 현실 같다.”
- 왜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무수히 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는데도 부모는 자식에게 몇 가지 손가락에 꼽을 만한 직업만 보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라고 하니까.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전문대든 어디든 가서 배우면 된다. 미국에 몇 년 있어보니까 그런 점이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생각하면 내 경우에도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처음엔 반대했지만 그 이후엔 항상 응원해줬다.”
- 전문대 후배들이나 진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사회에 나오면 전문적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내게 다시 선택권이 주어진다 해도 전문대를 택할 것이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내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게 필요하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AU(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비주얼뮤직(영상음악)을 더 공부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그걸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나에게 전문대란…
하나의 문(門)이었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좋은 문은 아니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굉장한 보물창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는 기다려주지도, 많은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누군가 내게 전문대에 관해 물어보면 ‘댓츠 이너프’라고 대답하겠다. 정말 전문대 수준의 교육이면 충분하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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