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서 미술 전공…20년간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 활약
기하학적 패턴의 명품 구두 선보여
수도사의 제조법, 400년 전 그대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신세계百 판권 확보
[ 김선주 기자 ]
피에르 아르디를 ‘명품 구두 디자이너’로만 부르긴 어렵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사범학교에서 조형미술을 전공했다. 당시 무용도 함께 전공, 졸업과 동시에 한 무용단에 입단했다. 이곳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미학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기반으로 1985년 패션 잡지 베니티페어 이탈리아판, 보그 옴므 등에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여성화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년 뒤부터였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에서 여성화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0년 에르메스에 발탁됐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에서 여성·남성화 수석 디자이너(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맡게 된 것이다. 2001년에는 최상위 쥬얼리 컬렉션 CD로도 발탁, 현재 에르메스의 여성·남성화 및 쥬얼리 CD로 활약 중이다.
여성·남성화 분야에서는 또 다른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와 12년간 진행해 온 협업 컬렉션이 눈길을 끌었다. 협업 당시 발렌시아가의 CD는 지난해 11월 루이비통 여성복 CD로 자리를 옮긴 니콜라 제스키에르였다. 쥬얼리 분야에서는 2010년 발표한 ‘오트 비쥬테리 컬렉션’이 화제가 됐다. 2년 뒤 이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버킨백 ‘오트 비쥬테리 버킨백’을 출시했다. 다이아몬드 1160개로 악어가죽을 장식한 화려한 가방이었다. 21억원을 훌쩍 넘는 초고가였다.
이처럼 20년 이상 에르메스 CD로 활약하고 있는 아르디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여성화 브랜드도 갖고 있다. 1999년 발표한 첫 제품은 우아하면서도 구조적인 디자인으로 패션계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처음에는 여성화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곧 남성화, 가방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07년에는 미국의 캐쥬얼 브랜드 갭과 협업, 처음으로 캐쥬얼 구두 컬렉션을 발표했다.
올해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특유의 건축적인 디자인을 부각시켰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구두, 클러치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언뜻 보면 무난해 보이지만 기하학적인 패턴을 활용해 생동감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돔’은 신체의 굴곡을 형상화한 제품이다. 소가죽, 염소가죽, 뱀가죽으로 만들었다. 역동적이면서도 흐르는 듯한 선이 특징이다.
‘우모’는 옆면이 트인 쇼트 라이딩부츠다. 남성화에서 즐겨 쓰는 디자인을 여성화에 접목했다. ‘프리즘’은 각진 디자인이 특징인 10㎝ 웨지힐이다. 여러 가지 색상을 절묘하게 섞어 가죽으로 만들었다. 뒤꿈치 부분이 열려 있어 여름철에 시원하게 신을 수 있다.
‘그리드’는 큐브 패턴의 가죽 레이스가 관능적인 제품이다. 전 세계 500켤레만 생산한 한정판 ‘스니커즈’는 흰색 가죽에 무채색 줄무늬를 적용한 제품이다.
올 가을·겨울 컬렉션 주제는 ‘미니멀 팝’이다. 대담하면서도 간결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UFO’는 스웨드와 뱀가죽 소재로 만들었다. 펌프스와 샌들 등 두 가지 스타일이다. ‘그래비티’는 발목 부분에 금속성 링을 부착한 부츠다. 우주비행사의 부츠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레이드 힐’은 2000년 출시됐다가 이번에 재출시했다. 당시 다소 무겁고 견고함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던 디자인을 보완했다. 아르디가 자신의 역대 작품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피에르 아르디는 현재 크리스챤 루부탱, 로저 비비에르와 함께 프랑스 3대 명품 구두 브랜드로 꼽힌다. 모델 케이트 모스, 배우 귀네스 팰트로, 가수 어셔 등이 즐겨 신는다. 국내 유명인 중에서는 배우 김민희, 이연희, 최강희, 아이돌그룹 엑소가 즐겨 착용한다.
미국의 니만마커스,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 등 해외 유명 백화점에도 속속 입점했다. 국내에는 신세계백화점의 편집매장 분더샵을 통해 2012년 소개됐다. 첫 단독 매장은 지난 2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열었다. 이곳은 아시아 최초로 피에르 아르디의 모든 컬렉션 제품을 접할 수 있는 매장이다.
약국서 탄생한 수도원 香
성 도미니크는 1216년 도미니크 수도회를 설립했다. 청빈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유럽 일대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던 수도사들은 1221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주도 피렌체에 정착했다. 이들은 수도원 정원에서 약초를 키워 자신들이 바를 연고와 향유를 만들었다.
수도원 제품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400여년 뒤인 1612년이다. 토스카나의 대공 페르난도 디 메디치 1세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 설립을 허가하면서부터다. 이곳은 402년 역사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이탈리아 명품 화장품·향수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전신이기도 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아직도 수도사들의 제조법을 활용한다. 향수, 비누, 방향제, 오일, 향료, 크림 등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비누 한 개를 만들기 위해 환기실에서 두 달 동안 원료를 숙성시킨다. 제품에 사용하는 약초도 피렌체 인근에서만 재배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첫 번째 향수 ‘아쿠아 디 콜로니아(100㎖·19만8000원)’는 1533년 처음 만들어졌다.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 파리로 가져가면서 ‘왕비의 물’로 유명세를 탔다. 카테리나만을 위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한정판’이었다. 국내에서는 향수로 유명해졌지만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천연 원료로 만든 피부 관리 제품도 다양하게 구비했다. ‘아쿠아 디 로즈(250㎖·3만8000원)’는 피부 진정, 수분 공급 효과가 뛰어난 무알코올 토너다. 매년 5월 피렌체에서 피는 장미에서 추출한 원액으로 만든다.
‘토니코 페르 라 펠레(250㎖·6만9000원)’는 알로에 베라, 국화꽃 추출물이 피부에 영양을 채워주는 무알코올 토너다. ‘크레마 이드랄리아(50㎖·13만3000원)’는 아보카도 오일, 호호바 오일, 비타민 E 성분이 함유된 수분 크림이다. ‘리제너레이티브 세럼(50㎖·29만8000원)’은 1500m 고도에서 재배한 사과 세포 추출물을 넣은 세럼이다.
이은영 신세계백화점 해외잡화담당 잡화팀 바이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400여년의 전통을 지닌 명품 브랜드”라며 “품질이 뛰어난 것은 물론 특유의 향기로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10월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다. 지난 3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 신규 매장을 열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