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프런티어 -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장기 유사체 담긴 장치에 의약품 주사해 실시간 효능 확인
4년내 인체 유사도 70% 목표
[ 임근호 기자 ]
“동물 실험 때문에 국내에서만 한 해 500만마리의 동물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지난 20일 대전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동물 실험을 줄여나가는 추세”라며 “이 때문에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3월부터 동물 실험을 거친 원료가 들어간 화장품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동물 실험을 통과한 의약품이 인간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을 내는 사례도 있다. 입덧을 막아준다는 약으로 유명했던 ‘탈리도마이드’는 동물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거의 없었지만 1962년 판매가 금지되기까지 이 약을 먹은 임신부를 통해 1만2000여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정 연구원이 주도하는 ‘실험동물 대체용 인공실험체 구현 사업’은 인간 세포에 기반을 뒀다. 동물 실험을 줄이면서 인체에 가까운 반응을 얻어내겠다는 목표다.
○동물 실험 대체할 인공실험체 개발
그를 따라 들어간 작은 실험실에는 네 개의 시험용 접시를 수직으로 쌓아놓은 장치가 보였다. 각각의 접시에는 분홍빛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 액체는 관을 통해 층을 따라 순환했다. 정 연구원은 “각각의 접시에는 인간의 심장과 간, 신장, 장 세포를 배양해 만든 장기 유사체가 들어있다”며 “분홍색 액체는 혈액처럼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인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 연구원은 “의약품의 효능과 독성을 확인할 때 주로 네 개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때문에 이렇게 구성했다”며 “장치에 의약품을 주사하면 용액을 따라 순환하면서 각각의 접시에 담긴 심장과 간 등의 세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구성된 인공실험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더 정확한 인체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또 시간에 따라 의약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다. 관건은 인간의 장기와 비슷하게 장기 유사체를 만드는 일이다. 장기 유사체는 특정 장기 세포를 3차원 구조로 배양해 해당 장기와 비슷한 기능을 하도록 유도한 조직이다. 하지만 간 세포를 잔뜩 배양한다고 간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는 “유사장기체를 만들 때는 간세포 외에 혈관 세포 등을 같이 집어넣지만 원하는 대로 조직이 구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2018년까지 인체와 70% 수준의 유사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수요 20% 대체 예상
유전체의학연구센터 소속인 정 연구원은 원래 암 연구로 이름을 알리던 과학자다. 어떤 유전자가 암세포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작업이다. 2012년에는 ‘제11회 한국 로레알 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에서 40세 이하의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과학자 세 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2년 전 인공실험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두 마리의 반려견을 집에 들이고 나서다. 정 연구원은 “연구실에서 한 해에 200마리의 쥐를 죽이는데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던 게 반려견을 키우고 나서는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정 연구원은 “안정성평가연구원으로부터 인공실험체가 인증을 받으면 국내 동물 실험 수요의 20%를 대체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인체 유사도를 90%로 높인다면 대체 비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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