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디플레 탈출위한 '마이너스 금리' 카드…드라기 ECB 총재 초유의 실험 성공할까

입력 2014-06-13 19:06
◆ECB의 ‘마이너스 금리’

유럽중앙은행(ECB)이 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열고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ECB는 시중은행이 ECB에 맡기는 자금에 대한 금리를 현행 제로(0)에서 마이너스 0.1%로 낮추고 11일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ECB는 또 경기 부양을 위해 연 0.25%인 기준금리를 0.15%로 0.1%포인트 인하했다.

- 6월6일 한국경제신문

‘유럽 합중국’의 통화신용 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 부양을 위해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이너스 금리’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경기 침체와 싸우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일본 중앙은행(BOJ)에서도 쓴 적 없는 ‘극약 처방’이다.

‘은행의 은행’인 중앙은행은 가계나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들과 거래하지는 않는다. 정부나 금융회사가 거래 대상이다. 그래서 마이너스 예금금리도 가계가 기업이 넣는 예금에 대한 이자가 아니다.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이자다. 시중은행들은 개별 경제주체들로부터 받은 예금 중 일부를 중앙은행에 예치한다. 이 예치금에는 예금주들이 돌려 달라고 요구할 때에 대비해 법에 정해진 대로 의무적으로 중앙은행에 쌓아둬야 하는 법정 지급준비금(지준금)과, 이 법정 지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예치하는 초과 지준금이 포함된다. 중앙은행은 이렇게 쌓아둔 시중은행들의 돈에 대해 일정한 이자를 지급한다. 법정 지준금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와 예치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자를 줄지는 경기 동향, 금융사의 경영 실태 등을 보고 중앙은행이 정한다.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주는 이자는 적을수록 은행들이 더 많은 대출을 하게 하는 유인이 된다. 가령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예치금에 주는 이자를 낮추면 돈을 맡기려는 은행이 줄어 시중 유동성은 늘게 된다. 시중은행은 잉여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겨 놓기보다는 기업과 가계에 더 많이 공급해 시장 유동성은 결과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ECB의 세 가지 카드

ECB가 이번에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준금리를 0.25%에서 0.15%로 인하하고 시중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초과 지준금)에 대해 -0.1%의 금리를 부과한다. 둘째,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중앙은행 대출 프로그램(LTRO)을 가동해 최대 4000억유로(약 550조원)의 대출을 제공한다. 셋째, SMP(Securities Markets Programme)라고 하는 기존 국채 매입의 불태화 정책을 포기한다. 불태화 포기는 재정난을 겪는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면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했던 시중 유동성 환수 조치를 그만둔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풀릴 자금은 1625억유로로 추정된다.

ECB가 시중은행들의 초과 지준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로 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볼 수 있다. 이제 유로존 은행들은 법정 지준금을 초과해 중앙은행에 쌓는 돈에 대해선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보관 수수료를 내야 한다. 자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데 대한 일종의 벌칙인 셈이다.

ECB는 이와 함께 통화신용 정책의 주요 수단인 기준금리를 연 0.25%인 0.15%로 0.1%포인트 낮췄다. 2011년 7월 1.5%였던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까지 0.25%포인트씩 계속 낮아져 0.50%까지 떨어졌고 결국 0.15%까지 추락했다. 이번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의 금리도 낮아진다. 이렇게 돈을 빌리는 비용이 줄어들면 소비나 투자가 늘어날 유인이 생긴다.

금리가 낮아져 시중에 유로화 자금이 많아지고 더 높은 이자를 좇아 외화 자금이 유로존 밖으로 빠져나가면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면 유로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

ECB는 또 시중은행들이 가계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해줄 수 있도록 ‘실탄’을 공급하기 위해 저금리 장기대출(LTRO)도 해주기로 했다. LTRO는 2018년까지 실시하며 첫 규모는 4000억유로(약 556조원)다. LTRO(Long Term Refinancing Operation)는 유럽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태로 지속될 경우 추가로 ‘비전통적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중앙은행이 시중의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미국식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양적완화(QE) 정책은 버냉키 전 Fed 의장이 경기부양을 위해 썼던 초강력 경기부양책으로 중앙은행이 무한정 자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비(非)전통적 통화신용 정책이다.

기대효과는

ECB가 이번 정책으로 기대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확대와 물가 상승을 유도하는 것. 둘째, 잉여자금이 많은 독일 은행들이 남유럽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ECB의 이번 결정이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비관론도 적지 않다. 기업이나 가계의 대출 수요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둔 예치금도 많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은행들이 대출을 꺼린 것은 자본비율 제고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라며 은행들의 자본 개선 조치가 끝날 때까지는 대출이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많은 유로존 국가가 지나친 관료주의로 경쟁력을 잃었으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에 영향은

‘제로 금리’는 한때 중앙은행들 사이에서는 ‘금기어’에 가까웠다. 초저금리 상태가 오래 가면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꺾여 소비와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는 대세가 되다시피 했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무제한 뿌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 결과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통화가치는 하락한다.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Fed의 달러 약세 유도와 일본 아베노믹스의 엔화 약세 정책은 그동안 통화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행됐다.

선진국들의 통화완화 정책은 한국으로서는 원화 절상(원화가치 상승)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통화전쟁 속에서 원화가치 상승률은 올 들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홍준표 연구위원은 “원화 절상이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관광수지 적자폭을 확대시켜 내수 경기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1분기에 작년보다 3.9% 성장하면서 지난 3년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를 둘러싼 혼선과 세월호 참사로 경제 심리가 위축돼 그나마 살아나던 부동산과 소비가 다시 힘을 잃고 있다. 또 국내 물가는 올 들어 1%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목표치(2.5~3.5%)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기업의 투자 부진 역시 유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각종 규제 때문에 차라리 외국에 공장을 짓는 곳도 상당수다.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놨지만 손에 잡히는 건 거의 없다. 세기의 실험을 시도하는 ECB의 결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