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논문 수만 따지는 '정부지원' 없애야…"산학협력 의무화해라"

입력 2014-06-12 21:47
수정 2014-06-13 03:44
<3부> 공대가 변해야 기업이 산다
(3·끝) 연구와 기술 균형 찾아야

서울대의 실험
논문없는 기술자 교수 채용
공학+인문학 '디자인스쿨' 도입…학생들에게 실습 중심 교육

공대 패러다임 변화
SW 등 산업환경 급변…전공 교과과정 확 바꿔야


[ 김태훈 기자 ]
서울대 공과대학은 다양한 전공 분야 학생들이 모여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학설계 창의교육 디자인 스쿨(가칭)’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공학과 인문학을 결합해 다양한 디자인을 실험하고 학생들에게는 실습 경험을 주는 미국 스탠퍼드대 디자인 스쿨(D school)을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올 하반기에는 산업 현장 경력을 갖춘 교수도 선발할 예정이다. 논문 없이 현장 경력만으로 교수를 뽑는 것은 1990년대 이후 20년 만이다. 공대가 과학기술인용색인(SCI) 논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기업 현장과 멀어졌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교수 선발과 교육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산학협력·교육 성과도 반영해야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대학 교수 중에서 해외 저널에 논문을 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논문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대학 국제화를 표방한 ‘대학원 중점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사업단 선정 때 논문 성과를 주로 평가했는데 이게 1999년 ‘브레인코리아(BK)21’ 사업으로 발전했다. 대학들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교수의 논문 작성을 의무화했다.

새 교수를 뽑을 때도 획일적으로 논문 실적을 평가했다. 2006년 시작된 2단계 BK21 사업 때는 산학협력 성과를 일부 평점에 반영했지만 계량화가 쉬운 논문 중심 평가를 바꾸지는 못했다. 지난해 시작된 BK21플러스 사업에서는 산학협력 평가가 형식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아예 중점 항목에서 제외해버렸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 새롭게 시작되면 여기에 맞춰 대학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대가 산업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면 이 같은 평가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 잘하는 교수만이 아니라 교육, 산학협력을 잘하는 교수도 승진과 사업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다양한 평가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은 “지금은 정부가 과제를 줄 때 논문 양으로만 평가하는데 산학협력 과제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평가하면 교수들도 기업과의 협력을 늘릴 것”이라며 “지금은 정부 과제 하는 게 편하니 기업과 연구하려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모든 교수가 의무적으로 산학협력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10년 이상 정부 연구과제를 받아 논문 쓰는 데 익숙해진 분위기를 바꾸려면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논문 성과만으로는 승진에 필요한 100점의 점수를 얻지 못하도록 산학협력, 교육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대가 기업 현장과 멀어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도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올초 공대혁신위원회를 만들어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준식 서울대 부총장은 “그동안 획일적으로 논문을 강조하면서 공대가 연구에만 쏠리는 문제가 생겼는데, 또 모든 교수에게 산학협력을 하라고 하면 형식적인 내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산학협력에 관심이 있는 교수들이 논문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달라진 환경에 맞게 교과과정 재편

부실화된 공대 교육과 관련해선 현장 중심의 실습을 강화하는 게 핵심 과제로 꼽힌다. 서울대 공대가 디자인 스쿨을 도입하려는 것도 학생들에게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서다. 서울대 공대는 공대생들이 재무기초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경영학개론, 재무제표 등을 배울 수 있는 온라인 강의도 준비하고 있다. 학점은 없지만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게 제도화할 계획이다.

이건우 학장은 “전공기초 능력과 실습 경험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 스쿨, 온라인 경영 강좌 등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학생들이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습을 해보고 부족한 게 느껴질 때 전공심화 수업을 들으면 학습 동기도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공 교육 전반을 달라진 산업환경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기업들의 단체인 게이단렌은 2005년 산업 분야별로 필요한 기능과 대학 교육의 미스매칭을 분석하는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 급변하는 산업에 맞춰 대학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공 수업이 부족하다” “기초 능력이 떨어진다” 등 추상적 비판만 많을 뿐 실제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분석이 없다. 배영창 한양대 입학처장은 “일본에서는 10년 전 이미 공대 교육이 부실해졌다는 문제 의식에 따라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고 교육 과정도 바꾸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단순히 전공만 늘릴 게 아니라 달라진 산업환경을 분석해 전공 과목 등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과정을 바꾸기 위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현장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실습을 원하는 대학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중개센터를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자사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직접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영아 원장은 “전국 156개 공과대학이 모두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문제를 개선하려면 특성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기준을 만들어 놓고 대학을 서열화시키기보다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산학협력대학 등 대학이 설립 비전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 사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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