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신출귀몰' 돕는 휴대전화 감청제한법

입력 2014-06-11 20:37
수정 2014-06-12 13:53
인사이드 스토리

유 전 회장 · 조력자 대포폰 사용
檢 "실시간 감청땐 신속 검거가능"

휴대전화 감청 '서상기법' 국회 계류
도피 장기화 계기 찬반 논란 재점화


[ 정소람/홍선표 기자 ]
“대포폰으로 범죄 계획을 수시로 모의하고 있는 중에도 우린 흔적만 쫓아야 하니 검거가 쉽겠습니까. 휴대전화 감청 법안만 진작 통과됐어도 벌써 잡았을 텐데….”(검찰 관계자)

검 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의 도피를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두 엄마(김 엄마·신 엄마)’의 체포를 위해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 11일 재진입했으나 신병 확보에 실패했다. 앞서 금수원 인근 별장과 전남 순천 은신처 급습작전도 한 발 늦어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검찰의 체포작전이 잇달아 실패하면서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유씨와 그를 돕는 측근들은 여러 대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이용해 수시로 도주를 모의하고 있는데도 검찰은 감청을 할 수 없어 이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함에 따라 체포작전이 번번이 실패하고 있어서다.

인권 만능주의에 밀려 현행범 감청도 못해

검 찰은 잇단 검거 작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휴대전화 감청이 어렵다는 점을 하소연하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국가기관은 국가안보와 범죄 수사에 있어 휴대전화를 포함해 모든 통신에 대해 감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감청 장비가 없어 휴대전화 감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휴대전화 감청이 어렵게 된 이유에는 사생활 및 인권침해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중심으로 휴대전화 감청이 이뤄졌다. 하지만 불법도청 사건인 ‘X파일 사건’ 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안기부는 2002년 보유하던 감청장비를 폐기했으며, 이후 휴대전화 감청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인권보호라는 명분에 밀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도피자조차 체포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등 공권력이 우롱당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서상 기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월 각 이동통신사에 감청 장비 구축을 의무화하고 정보·수사기관이 이들을 통해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검찰은 현재 유씨 일가와 구원파 비호 세력들의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감청하지 못하고 휴대전화 기지국을 통해 통화 내용 및 시간을 분석해 뒤를 쫓고 있다. 반면 유씨의 비호 세력 등은 대포폰 등을 통해 범죄를 모의하고 있기 때문에 ‘뒷북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실제 검찰은 앞서 유씨가 신도들 차에 숨어 금수원을 빠져나온 이후 첩보에 따라 금수원 인근 별장과 순천의 은신처 등을 잇따라 급습했으나 반나절 안팎 차이로 유씨를 놓치는 등 검거 작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검찰 관계자는 “유씨 일가처럼 조직적 비호를 받는 범죄자를 추적할 때는 휴대전화 감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통신사업자에 휴대전화 감청에 필요한 설비 구축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주요 범죄수사를 위해 국가기관이 감청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사생활 침해’ 반대도 만만치 않아

전 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상기법’ 추진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성호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권 침해 문제는 법원의 엄정한 영장 발부를 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의 전체적 안전성을 높이고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통과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권 및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정부 기관이 개인의 통화 내용을 합법적으로 엿들을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사생활을 쉽게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는 것”이라며 “감청한 통화 내용이 유출돼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소람/홍선표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