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화증권 사장의 틀 깨기 실험

입력 2014-06-11 20:33
수정 2014-06-12 05:24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매도 의견’ 리포트가 이슈다. 매도 의견을 받은 기업은 리포트를 낸 증권사에 통상 ‘협박’을 한다. 거래를 끊겠다며 목을 조른다. ‘을’ 입장인 증권사는 일종의 ‘자체 검열’을 하게 되고, 매도 리포트는 자연스럽게 설 땅을 잃는다.

이런 현실을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화는 한화투자증권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 리포트를 최근 과감히 써 화제가 됐다.

개인적 결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애널리스트가 전해준 말이다. “사장이 매도 의견을 안 낼거면 회사를 관두라고 할 정도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는데, 그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중간에 낀 애널리스트들이 죽을 맛이다.”

매도 리포트 10% 주문

작년 한화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한 주진형 씨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 사장은 ‘리포트의 10%는 매도 의견을 내라’는 엄명을 내렸다.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판매도 중단시켰다. 지수 등락률의 두 배로 오르내리는 레버리지 ETF는 하루 지수가 5% 떨어지고 다음날 5% 오르더라도 투자자가 손실을 보게 된다. 요즘처럼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장에선 고객에게 손실만 가져다줄 뿐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조치도 있다.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다한 거래를 하는 일명 과당매매(churning)에 대한 대응이다. 고객이 투자를 맡긴 자산에 대한 과당매매는 국내에선 형사처벌 근거조차 없다. 증권사와 투자자 간 끊이지 않는 민사 분쟁의 불씨인데도 말이다.

한화는 이를 ‘비건전 매매’로 이름 짓고, 내부감시를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오프라인 주문 비율 70%, 맡긴 주식 수의 3배 거래 등 기준을 넘길 때 비건전 매매로 판단한다. 고객의 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기준을 어기면 서비스 중지 등 결정을 내린다.

신뢰 회복위한 자기파괴

한화 사례를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가 있다. 업계를 리드하는 증권사가 아닌데도 이런 시도만큼은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은 올해를 ‘고객(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시기라고 연초에 일제히 진단했다. 고객 신뢰를 이끌어내야 증시에 돈이 들어오고 활력이 생기고 지수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는 감이 없지 않다. 한 대형 증권사는 신뢰 회복을 위해 직원 평가와 성과급 지급을 고객 수익률과 연동시키는 방안을 실시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딱 그 정도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화 같은 시도를 폄하하는 분위기다.

주 사장과 호형호제하는 다른 증권사 임원 얘기도 의미심장하다. 이 사람이 최근 사석에서 주 사장에게 “형, 그런다고 되겠어요?”라고 선문답 비슷하게 했다. 한화의 시도가 증시와 업계에 얼마나 선순환(善循環)을 일으키겠느냐는 얘기다. 주 사장은 “그렇게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으니 업계가 이 모양이지”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중견 증권사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바람을 대형사들이 외면해서야 업계 리더로서 자격이 있을까 싶다.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