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험대 오른 국민은행

입력 2014-06-11 20:31
수정 2014-06-12 05:24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 김일규 기자 ] “120명이나 징계 통보를 받아 침울하겠다고요? 뒤에서 표정관리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초유의 대규모 임직원 징계 사태를 눈앞에 둔 국민은행의 한 임원이 들려준 내부 분위기다. 그는 “나가는 사람은 나가는 것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많다고 덧붙였다. 징계를 받고 옷을 벗는 사람이 많은 만큼 빈자리를 노리고 ‘뛰는’ 사람들의 행보도 빨라졌다는 전언이다. 그는 “자리를 노리는 내부자들 때문에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가 더 높아졌다는 말이 돌 정도”라며 황폐해진 조직문화에 씁쓸해했다.

금융가 사람들 역시 KB금융의 고질병이 도지며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란 우려의 시각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KB의 고질병이란 ‘줄 대기’ 인사를 말한다.

실제로 징계 통보된 지 이틀도 안 지났는데 ‘누가 누구를 만나고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중징계 조치가 확정돼 동반사퇴할 경우를 대비해 움직이는 인사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행에서는 올해 많은 임원이 임기만료를 맞는다. 부행장 7명 중 2명, 사외이사와 전무 각 2명, 상무 1명의 임기가 연내에 돌아온다. 여기에다 26일로 예정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수위가 정해지고 나면 대규모 후속 인사가 불가피하다.

사실 KB금융과 국민은행 임직원들이 심각한 내홍을 드러내며 대규모 징계를 받게 된 배경에는 ‘인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 없는 회사다 보니 ‘내 사람 심기’ 경쟁이 치열하고 그 과정에서 촉발된 갈등이 ‘전산 교체’를 계기로 폭발했다는 진단이다. ‘낙하산 인사→보은 인사→편 가르기 인사→줄 대기 인사’로 이어진 적폐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KB금융은 2008년 출범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중징계를 받고 임직원 몇 명이 떠나고 그 자리를 새 사람으로 채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적된 문제가 곪아 터진 만큼 이번엔 제대로 수습해야 한다. 다가올 ‘인사’에서도 편 가르기와 줄 대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더 가혹한 미래를 맞을 수도 있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