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투자자가 알면 기가 찰 애널리스트 보고서

입력 2014-05-28 14:19
[ 노정동 기자 ] 상장기업과 산업계를 분석해 밥을 먹고사는 금융투자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이 최근 업계 현실을 전혀 모르는 '부실한' 리포트를 내는 경우가 많아 빈축을 사고 있다.

"바쁜 업무에 쫓겨 탐방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이들이 쓴 기업 분석 보고서를 참고해 투자에 밑거름을 삼기도 하는 투자자들이 들으면 말문이 막힐 일이다.

28일 모 증권사 유통 업종에서 나온 A애널리스트의 보고서.

"D사(社)의 장류 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률 추이를 살펴보면 1+1이 가장 극심했던 2009~2010년의 영업이익률은 부진했지만, 1+1이 완화된 2007년, 2013년의 OP(영업이익) 마진율은 10%를 넘어서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제품 한 개를 사면 동일한 제품 한 개를 더 주는 이른바 '1+1(원플러스원) 행사'가 점차 사라지면서 식음료 기업들의 이익 개선이 기대된다는 게 이 리포트의 요지다.

기존 1개 가격에 제품 2개를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했던 제조사들이 이제는 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 경영 여건이 개선될 것이란 주장이다. 1+1 행사가 극심했던 시기와 완화된 시기의 영업이익률 비교를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 D사의 영업이익률이 부진했던 이유는 1+1 행사가 극심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고추장의 원재료를 밀가루에서 쌀로 바꿨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재료의 비용이 올라가서다.

그동안 비용 절약 차원에서 장류의 원재료를 밀가루로 써왔던 제조사들은 2009년부터 기존 원재료보다 가격이 3배가량 비싼 쌀을 고추장의 원재료로 사용했다. 장류 시장이 정체 상태에 빠지자 차별화에 나선 제조사들의 고육지책이었다.

모 식품업계 관계자는 "2009~2010년 당시 장류 제조사들이 잇따라 고추장의 원재료를 쌀로 바꾸면서 비용이 상승한 것"이라며 "1+1 행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홈쇼핑 업체를 분석한 또 다른 리포트다.

"홈쇼핑 4년간의 변화가 향후 성장을 보장할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홈쇼핑은 단가와 품목 측면에서 백화점과 경쟁구도가 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백화점과 홈쇼핑의 명품 판매단가가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애널리스트의 주장은 홈쇼핑 산업에서 히트 상품의 주기가 평균 4년이었고, 최근 패션·잡화로 '먹고 살았던' 홈쇼핑 업체들이 이제 다시 혁신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가격 경쟁력에서 백화점보다 우위를 점했던 홈쇼핑 채널의 메리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이 애널리스트의 주장이다. 두 채널에서 판매하고 있는 명품 판매 가격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홈쇼핑 회사들이 들으면 억울할 일이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명품은 대개 '병행수입' 제품이고,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정식수입' 제품이므로 가격이 비슷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것은 백화점의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명품을 홈쇼핑 제품과 비교한 것이다. 백화점의 경우에도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정식 수입 제품을 판매하지만, 온라인몰에서는 병행수입 제품을 판매한다.

이 애널리스트는 병행 제품끼리 비교했으므로 가격이 비슷한 것은 당연하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병행수입 명품과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정식수입 제품은 여전히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는 홈쇼핑이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는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에 대해 이 애널리스트는 "사실 명품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라며 "RA(보조 애널리스트)가 한 부분이라 잘 모른다"고 답했다.

하루에도 수백건의 기업·산업분석 보고서가 쏟아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업계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쪽수 채우기'에 급급한 리포트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이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 자체의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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