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실 납세자들의 분노

입력 2014-05-26 20:37
수정 2014-05-28 17:07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


[ 홍선표 기자 ] “당신이 뭔데 우리 회장님이 어딨는지를 묻는 거야. 공무원이면 다야?”

지난 21일 오전 8시 서울 반포동에 있는 고급 빌라 지하 주차장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수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A씨를 찾아간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이 A씨 운전 기사에게 ‘회장님’의 소재를 묻자 운전기사는 ‘호통’을 치며 한 조사관을 때릴 기세였다. 베테랑 조사관이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조사관이 기자에게 다가와 한숨을 쉬며 “평소에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해준 게 없다며 세금 걷어서 어디에 쓰냐고 따지던 사람들도 막상 밀린 세금을 내라고 찾아오면 ‘배째라’ 식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현장 방문을 마친 조사관들은 빌라 정문을 열어준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조사관들이 찾고 있는 악성 체납자들이 상당수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 고급 빌라에 거주하는데, 공무원들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이유로 체납자들이 경비원을 해고하는 분풀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악성 체납자와의 ‘전쟁’에 나선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에 대한 기사(본지 24일자 A18면)가 나가자 포털 사이트엔 10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갈수록 교묘한 수법으[경찰팀 리포트] 수억대 세금 안내던 악질 체납자, 5000만원 그림 압류하자 바로 납부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체납자들을 엄벌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월급을 손에 쥐기도 전에 각종 세금부터 내는 ‘유리지갑’들의 분노가 거셌다. 한 직장인(아이디 gksm****)은 “예전에 30만원도 안되는 자동차세를 깜빡하고 못냈을 때는 번호판 떼어 간다고 직접 찾아왔었는데…. 수억원씩 세금을 체납할 때까지 공무원들은 대체 뭐하신 건지?”라며 고액 체납자들 앞에선 무기력한 정부를 탓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시골에서 밭농사 지어 고생해서 번 돈으로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며 “고소득층 어른들께서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성실 납세자들의 한숨이 조세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