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전, 로마의 황제가 권력을 버리고 선택한 도시가 있다. 그는 이곳에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을 짓고 평온한 여생을 보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성곽도시 스플리트의 이야기다.
여행의 시작점, 리바 거리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이자, 달마티아 지방의 주도다. 로마시대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거대한 성곽도시를 건설하면서부터 이 지역은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성곽을 따라 길게 뻗은 길, 리바 거리의 도로에 깔린 흰 대리석이 태양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난다. 거리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섰다.
유럽 최고의 휴양지답게 항구에는 수백대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하루에도 수십대의 크루즈 선이 수많은 여행객을 내려놓는다. 배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곽의 남문인 브라스 게이트 앞으로 달려간다. 이곳에는 디오클레티안 궁전의 옛 모습을 조각한 청동 궁형도가 있다. 해가 지고 성곽을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에 불이 켜지면, 평온한 촉감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리바 거리의 활기와 낭만은 배가된다.
황제의 도시로 들어서다
견고하고 거대한 성곽 도시는 295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설됐다. 두께 2.7m, 높이 25m의 성벽이 바다에 면한 외벽 215m, 폭 180m의 길이를 따라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다. 성벽의 동서남북 사방으로는 아이언, 실버, 브라스, 골든 게이트라는 이름의 성문을 냈다. 인근의 섬에서는 석회암을,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을 수입해 10년에 걸쳐 완공한 성곽도시는 현존하는 로마시대 유적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아케이드를 빼곡히 채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따라가다 보면, 황제가 연설하거나 회의를 했던 열주 광장에 닿는다. 아름다운 열주와 유적의 흔적이 곳곳에 있고 포럼 한쪽에는 성 돔니우스 대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성당의 백미는 종탑에 올라 스플리트의 전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 꼭대기에 이르면, 쪽빛의 아드리아해 곁으로 붉은 지붕이 촘촘히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삶의 터전으로 거듭난 황제의 거처
종탑에서 스플리트 전경을 바라보면, 로마 유적 벽면에 걸려 나풀거리는 빨래들이 보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지만, 이곳엔 3000여명의 사람이 삶을 꾸려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종탑에서 내려와 성곽 안쪽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누볐다. 마주치는 모든 풍경은 그림이나 영화 속 장면 그대로였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렇게 비좁은 길을 따라 걷다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물건들과 마주치고, 광장을 만났다. 그리고 스플리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의 동상을 만났다. 세계적인 천재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조각한 주교 동상의 왼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살포시 손을 얹었다. 언젠가 이 아름다운 곳에서 짧은 한 계절 동안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여행팁
인천에서 스플리트까지 직항은 없다.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해 자그레브나 두브로브니크까지 간 후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스플리트 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그레브에서는 차로 네 시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차로 세 시간 거리다. 언어는 크로아티아어를, 화폐는 쿠나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환전할 수 없으므로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스플리트는 유명 휴양지인 만큼 영어 소통이 원활한 편이다. 성 돔니우스 성당 내부에선 사진촬영이 불가하다. 성당의 종탑과 지하 묘소는 오후 6시까지만 개방하므로 적절한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스플리트 여행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visitsplit.com)에서 얻을 수 있다.
스플리트(크로아티아)=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