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도쿄를 찾았다.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현장취재를 마친 뒤 귀국길에 도쿄에서 하룻밤 머문 적이 있다. 지난해 세 차례 일본을 방문했지만 모두 간사이(오사카 교토 지방) 쪽이어서 도쿄를 보지 못했다.
한 나라의 변화를 알려면 수도를 찾아봐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나라의 변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2박3일 일정으로 도쿄를 다녀왔다. 발품을 팔아 시내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개점 2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쿄 스카이트리 꼭대기까지 가봤다. 도심재개발로 새 단장한 도쿄역 주변과 시내 긴자, 신바시 주변의 맛집거리, 백화점 가전매장과 골프숍 등도 들렀다.
짧은 체류 기간이지만 일본인들과 일본경제의 활력을 느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후 일주일 만에 봤던 도쿄의 분위기와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불안했다. 마치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과 같았다.
동일본 대지진 참사 직후 일본인들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2만여명의 사망, 실종자가 발생해 유가족은 물론 전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시시각각 전해오는 방사능 누출 소식은 일본열도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3년2개월 만에 방문한 도쿄에서 일본인들은 대지진 충격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줬다. 시내 백화점과 대형 식당가는 방문객들로 넘쳤다. 스카이트리 입장을 하려면 한 시간 반 이상 줄을 기다려야 했다. 빅카메라, 요도바시 등 가전매장은 소비자들로 북적였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내건 ‘강한 일본과 일본경제 부활’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듯했다.
도쿄에서 놀란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서울보다 오히려 물가가 쌌다. 김포공항 구내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려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싸다고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김포공항에서 커피 한 잔은 5500원. 귀국길에 사먹은 하데다공항 커피는 390엔(약 4000원)이었다. 도쿄 시내 커피전문점의 테이크아웃 커피도 200~300엔이면 충분했다. 음식값도 도쿄가 저렴했다. 일본 전국 최고 관광지로 떠오르 스카이트리 안에 있는 식당가에서서 라면, 우동 등 점심 메뉴은 400~500엔 짜리가 많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웬만한 점심 메뉴는 6000~7000원이다.
호텔비도 도쿄 쪽이 더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가 머문 호텔은 왕궁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20층짜리 특급호텔이었다. 주말 요금으로 하루에 2만 엔(트윈룸)을 냈다.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 정상 요금보다 할인을 받긴했으나 크기나 시설이 훌륭했다. 서울 시내 웬만한 특급호텔은 30만 원 선이다.
아직은 국민소득에서 우리나라의 2배 수준인 도쿄의 물가가 서울보다 높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서울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다. 경제성장이 정체된 우리나라의 물가가 높은 만큼 도시와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사람들이 살기에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반한 감점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들을 통해 여러차례 들었지만 실제로 ‘반한 감정’이 매우 심했다. 기자가 도쿄에서 근무하던 2000년 대 중반의 친한 분위기 확산기는 물론 3년 전 대지진 시기과 비교해도 한국과 일본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본에서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대형 서점인 도쿄역앞 마루젠 서점에서도 반한 분위기를 실감했다. 도쿄역 북출구를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오아조빌딩이 나온다. 이 빌딩엔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서점인 마루젠 도쿄역점이 있다. 샐러리맨이나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점이다.
서점 중앙 입구 쪽엔 ‘한국을 버려라’ ‘혐한’ 등 한국을 비판하는 제목의 책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돼 있었다. 지식인 층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일본인들의 반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웃나라로 서로 협력해야 할 한일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착잡했다.
셋째로, 일본인들은 공공 질서를 잘 지킨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이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부러웠다. 세월호 참사가 가장 기초적인 룰이 작동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점에서 기자의 마음은 무거웠다.
도쿄 스카이트리의 입장을 위해선 한 시간 반이 걸렸으나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질서정연했다. 도쿄 시내 길거리 바닥엔 담배꽁초나 휴지조각이 거의 없었다. 침이나 껌 자국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갈수록 지저분해지는 서울 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하철 등 대중 교통수단에서도 시민들의 질서의식을 확인했다.
3·11 대지진 직후 한국 주요 신문들의 1면 톱은 ‘일본 열도 침몰’이었다. 20여년의 장기침체와 정치 혼란을 겪는 일본이 이제 다시 정상국가로 살아나기 어렵겠다는 전망이 주류였다.
한국은 지난 3녀간 일본과의 격차를 좁혔을까. 사실 세월호 참사 전까지마도 그런 자신감을 가졌다. 진정한 ‘극일’을 위해선 아직도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사회가 가야 할 길도 멀다. 3년2개월 만의 도쿄 방문은 많은 생각을 남겼다.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