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6% 120억원에 사들여…췌장암 치료 백신 GV1001 생산시설 확보
식약처 품목 허가 기대…3자배정 유상증자도 참여
3대째 이어온 삼성제약, 85년만에 경영권 넘겨줘
[ 조미현 기자 ]
반도체 장비회사인 젬백스앤카엘이 소화제 ‘까스명수’, 간장약 ‘쓸기담’ 등을 만드는 삼성제약공업을 인수했다. 자회사 카엘젬백스가 개발 중인 췌장암 치료백신 ‘GV1001’의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제약사를 사들였다.
1929년 고 김종건 회장이 설립한 삼성제약소가 모태인 삼성제약은 3대를 이어온 경영권을 85년 만에 넘겨주게 됐다.
젬백스앤카엘은 삼성제약 지분 2만주(지분율 16.1%)를 120억원에 인수한다고 22일 공시했다. 이 회사는 삼성제약의 최대주주인 김원규 대표로부터 해당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받는다. 또 계열사인 젬백스테크놀러지가 30억원 규모로 삼성제약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렇게 되면 젬백스앤카엘과 계열사가 확보하는 삼성제약 지분은 17%에 이를 전망이다. 김상재 젬백스앤카엘 대표는 “삼성제약의 제조시설을 활용해 국내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등 자사 바이오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젬백스앤카엘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공장 내 오염을 제어하는 필터를 만드는 제조회사다.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바이오 분야를 택한 이 회사는 2008년 노르웨이 항암백신 개발회사 젬백스를 인수하면서 자회사 카엘젬백스를 설립했다.
카엘젬백스가 개발 중인 GV1001은 췌장암 항암백신으로 지난해 6월 임상 3상을 시행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회사는 두 달 뒤 ‘체내 면역 관련 단백질 수치가 높은 환자’의 경우에는 GV1001의 췌장암 치료 효과가 높다는 결과를 토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췌장암 환자에게는 약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조만간 식약처 품목 허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치료제 생산라인이 없는 게 고민이었다. 벨기에 제약회사 론자에 GV1001 생산을 위탁하고 있지만 국내 및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제조시설이 필요했다.
삼성제약은 경기 화성시에 5만9000㎡ 규모 생산 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국내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인증을 받은 시설이다.
올해로 설립된 지 85년 된 삼성제약은 197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1989년 마시는 우황청심원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살충제 ‘에프킬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97년 부도로 에프킬라 상표권을 존슨앤드존슨에 매각했다. 2002년 회생한 뒤에는 3세 경영인 김원규 대표가 회사를 이끌었다.
이후 신약개발 등 신규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소화제, 해열제, 간장약 등 일반의약품 판매에만 주력했다. ‘제2의 에프킬라’를 만들기 위해 ‘삼성킬라’를 내놓긴 했으나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11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부채도 585억원에 달한다.
젬백스앤카엘은 전국 병원을 대상으로 항생제 콤비신조 등 삼성제약의 전문의약품 영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미 레드오션인 항생제 시장을 개척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또 미국 유럽 등 거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국내 GMP보다 기준이 높은 해당국의 제조·관리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도 갖춰야 한다. 과도한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