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규제 없애라 - 한경 기업 신문고] 수도권 규제로 '페어차일드' 중국행…美·獨 허용하는 '투자 의료법인' 막아

입력 2014-05-22 21:17
수정 2014-05-23 04:15
과도한 건설사 겸업 금지
전기·통신·설계업 진출 못해

통신업체 새 요금제 정부승인
中企적합업종·마트 영업 제한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 이태명 기자 ]
경기 여주에 공장을 둔 A사는 6년째 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 중이다. 2008년 신규사업을 위해 기존공장을 증설하려 했으나 수도권 규제에 막혀 증설 불허 결정을 받아서다. A사의 발목을 잡은 건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이 법은 수도권 일대에서 공장 신·증설을 할 때 6만㎡를 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한다. A사 관계자는 “미국·유럽 주요국과 달리 한국만 수도권에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정부마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주겠다고 하는데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의 발언을 계기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풀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각종 ‘갈라파고스 규제’가 기업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갈라파고스 규제’가 공장 신·증설, 지배구조 등 기업의 주요 경영현안과 관련된 게 많다는 점에서 향후 규제 개선 방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규제’ 어떤 게 있나

기업들이 가장 먼저 꼽는 ‘갈라파고스 규제’는 수도권 규제다. 1983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만들어진 이후 30년째 수도권 개발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기업이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을 하려면 19개 법률, 58개 규제 등 ‘그물망’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업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다. 1996년 덴마크 레고그룹이 경기 이천에 유럽형 테마파크를 지으려다 포기한 것도 수도권 규제 때문이었다. 미국 반도체회사 페어차일드도 2000년대 초 경기도 부천 공장을 증설하려다 수도권 규제에 막혀 투자처를 중국으로 바꿨다.

재계는 수도권 규제가 해외 각국 정책과 정반대라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는 1960년대부터 도쿄 일대를 공업제한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수도권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자 2002년 관련 규제를 폐지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각각 1982년, 2003년 수도권 규제를 없앴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한국에만 존재하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기업 등이 병원을 설립해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는 걸 허용한다. 반면 한국에선 의료법을 통해 학교법인 혹은 사회복지법인에 한해 비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허용해 줄 뿐이다.

건설분야도 마찬가지다. 현행 법률은 한 건설사가 전기공사, 통신공사, 소방시설 설치 등을 겸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설사가 설계업에 진출하는 것도 엄격히 제한된다. 그렇다 보니 A건설사가 공사를 따낸 뒤 전기공사와 통신공사 등은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복잡한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건설공사의 업역(業域)을 구분해 겸업을 금지하는 규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선 전혀 없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기업경쟁력 약화’의 주범

통신업체가 요금제를 내놓을 때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요금인가제’도 해외 주요국에는 없는 규제다. 자동차대여업(렌트)의 범위를 승용차와 소형승합차, 15인승 이하 중형승합차로 제한하는 규제도 한국에만 존재한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등장한 ‘갈라파고스 규제’도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규제와 대형마트 휴일영업 제한 등이 그것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중기적합업종의 경우 초창기 지정할 때부터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불거지는 등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규제라는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기업·산업 약화로 이어진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규제 탓에 국내 기업은 해외로 나가고, 해외 기업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대두될 것이란 점에서다. 이런 우려는 국가경쟁력 세부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서 한국의 종합 경쟁력은 20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 규제 부담’ 순위는 90~100위권(2012년 114위, 작년 95위)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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