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자'가 늘어난다…이웃·환경·동물 '배려'

입력 2014-05-22 14:32
"소비를 중단할 수 없으니 가능하면 죄책감이 덜 드는 물건을 고르려고 합니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영희(37)씨는 은색 탐스 슈즈를 신고 에코백을 들고 있었다. 탐스 슈즈(TOMS shoes)는 신발이 한 켤레 팔릴 때마다 빈민국 아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신발 브랜드. 에코백은 일회용 봉투를 대신할 수 있는 면 재질의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가방이다. 반찬거리를 사러 온 김 씨는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채소와 동물복지를 고려해 생산한 닭고기를 골랐다.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타인과 지구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하려는 '개념 소비'가 늘고 있다. 욕망을 충족하려고 구매한 물품이 열악한 작업 조건에서 노동을 착취하거나 환경을 훼손하고 동물을 학대해 만들어진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죄책감을 줄일 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다.

미국 트렌드 분석 기관인 트렌드 와칭은 지난해 말 "죄책감 없는 소비(guilt-free consumption)가 새로운 경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개념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착한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며 '컨셔스 컬렉션(Conscious Collection)'을 선보였다. 유기농 면과 재활용 플라스틱 병, 텐셀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제품에 이어 최근엔 유기농 육류 생산용 가축에서 얻은 소가죽을 활용하고 인조가죽 대체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는 친환경 공법으로 물 사용량을 최소로 줄인 '워터리스 진'을 내놨으며 재활용 천과 플라스틱 병에서 뽑아낸 섬유로 '웨이스트리스 진'도 제작했다.

화장품 생산 및 개발 과정에 많은 동물이 희생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화장품 브랜드도 있다. LG생활건강의 에코 브랜드 ‘비욘드’는 모든 제품에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화장품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은 식품 분야에서 더욱 부각된다. 자연 방목 농장에서 생산한 달걀과 우유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으며 육류 생산 방식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들도 많다.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은 2012년 업계 최초로 동물복지를 고려한 시스템을 완성해 주목을 받았다. 하림의 '프레쉬업' 브랜드는 농장에서 닭을 잡을 때 자동 포획 장치를 사용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동을 유도한다. 적정수량만 상차해 스트레스를 줄이며, 골절 등의 부상도 방지한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닭을 기절시킨 후에 도계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비롯되는 날개 골절 및 근육 경직을 최소화한다. 현수 작업 담당자들의 스트레스를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

하림측에 따르면 자동포획 및 가스 실신 방식은 동물복지 시스템이 발달한 유럽에서 일반화한 공정이다. 하림 관계자는 "도계 직전 닭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경우 육질 및 신선도가 개선된다"며 "동물복지를 고려한 시스템이 결국은 건강한 제품으로 이어져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 와칭은 "숙련된 소비자들은 소비 충동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점점 더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소비를 계속하면서도 소비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욕구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