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의사가 뭘…' 핀잔에 첫 지원, 20년 이어졌죠"
간단한 눈꺼풀 수술로 눈 뜬 여성
"신이 나타났다" 난리난 적도 있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해야"
[ 이해성 기자 ] “처음 해외봉사 갔을 때 성형수술 받은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던 게 잊혀지지 않네요. 그런 뿌듯함이 계속 봉사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유대현 연세의대 성형외과 교수(52·사진)는 20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세대 창립 129주년 기념식에서 20년째 아시아 저개발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연세사회봉사상’을 받았다. 유 교수는 “보여주기식 봉사, 내가 이만큼 한다는 과시형 봉사가 많은 것 같다”며 “진정 상대방이 필요한 걸 찾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가 처음으로 해외봉사에 나선 것은 1995년. 군 복무를 마치고 초임 근무지로 원주기독병원에 있을 때 방글라데시 봉사단에 합류했다. “주변 사람들이 ‘성형외과 의사가 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핀잔을 주는데 사실 오기가 생겨서 자원했어요. 그렇게 봉사를 떠난 게 결국 인생의 큰 줄기가 됐네요.”
그가 방문한 방글라데시 마을에는 구순열(일명 언청이) 환자들 천지였다. 유 교수는 당시 환자들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참혹할 만큼 구순열이 심한 환자가 많았다. 유 교수는 환자 중 12명의 얼굴을 정상에 가깝게 되돌려놨다. 이슬람교 신념에 따라 수염을 평생 깎지 않고 안면기형으로 살아온 노인도 있었다. “이슬람 사람들은 모든 게 알라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에 인색합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평생 얼마나 불편했던지 수염을 기꺼이 다 깎고 수술을 받았어요. ‘대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며 고마워하는데 참 뭉클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의사로서 제 능력을 이쪽에 쓰자고 결심했습니다.”
저개발국은 왜 구순열 환자가 많을까. 출산율이 높고, 잘 못 먹고 못 살면 그럴 확률이 크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에 건넨 이동식 수술차량 사진을 보여줬다. 빛바랜 사진에는 수많은 구순열 환자와 함께 그의 부친인 유재덕 전 연세의대 교수가 있었다. 부친은 미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 취득 후 1961년 연세의대에 성형외과를 처음 설립한 국내 성형외과학 창시자다.
유 교수는 2000년 미 하버드대 유학시절에는 보스턴한인교회와 함께 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를 방문해 봉사했다. 그는 “눈꺼풀이 눌려 눈을 못 뜨는 여성 환자에게 간단한 수술을 해 눈을 뜨게 하자 ‘신이 나타났다’며 난리가 난 적도 있다”고 웃었다.
2001년부터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의료원 등 전국 9개 병원 성형외과 교수들과 함께 ‘글로벌케어팀’을 만들고 베트남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베트남 봉사는 라오스로 확대됐고 올해는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다. 연세의료원하절기의료봉사단장으로서는 매년 몽골을 방문해 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티오피아 케냐 등을 둘러보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확대할 방안을 찾고 있다.
두개골 이상을 동반하는 에이퍼트 증후군, 크로즌 증후군 등 심각한 안면이상 환자는 장비 문제로 국내로 초청해 진료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동문, 교회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학내 펀드를 조성해 의료비용을 조달하고 있다.
학생부학장을 맡았을 때는 충북 꽃동네 방문진료 의무화 등 봉사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아내와(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형제들도 모두 의사다. 유 교수는 “현지에 의술을 전수해 의료전문인력을 키우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며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돕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