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까지 달리던 '옛 기억' 품고 DMZ트레인 '통일의 꿈' 달린다

입력 2014-05-19 07:02
기차여행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관광열차 DMZ트레인이 운행을 재개했다. 서울역에서 경의선의 최북단인 도라선역까지 열차는 다양한 사연을 싣고 달린다. 기차는 임진강 철교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넌다. 통일을 향해 내달릴 DMZ트레인을 타고 초여름 가족여행을 떠나보자.

DMZ트레인은 평화를 싣고

서울역 플랫폼으로 기차가 들어왔다. 1919년에 도입돼 만주벌판까지 내달렸던 증기 기관차 ‘미카’를 모델로 만든 ‘DMZ트레인’이다. 기차의 외관은 화려하다. 칸칸이 다른 그림으로 래핑된 테마열차는 마치 싱그러운 신록처럼 눈을 부시게 한다. 전쟁의 상처 위에 생명이 움트고 있는 땅 DMZ로 떠나는 ‘DMZ트레인’은 거칠게 숨을 들이키며 내달릴 준비를 마쳤다. 노인에서 외국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DMZ트레인은 DMZ 내 최북단역 도라산역으로 가는 유일한 관광열차로 2009년 관광객 보안사고로 중단됐다가 이번에 재개됐다.

열차 안 곳곳에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녹아 있다. 좌석 커버는 평화의 상징인 바람개비를, 천장은 휴전선에도 막힘 없이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풍선 그림으로 장식했다. 객차 3량의 이름도 각각 평화실, 사랑실, 화합실로 칸마다 철도, 전쟁, 생태 등을 테마로 한 사진도 전시돼 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열차는 잠시 임진강역에 멈춘다. 민통선을 넘기 직전 승객들의 출입 검사를 위해서다. 군이 통제하는 민통선 진입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익숙한 에필로그 음악이 흘러나온다. 곧이어 ‘덜컹’ 하는 소리를 내며 DMZ트레인이 임진각 철교에 진입한다. 순간 시끌벅적했던 열차에 소리 없는 긴장이 감돈다. 경계를 넘어선 열차는 새로운 시간을 여는 듯 힘차게 달린다. 창밖으로는 폐철교의 교각과 자유의 다리가 보인다.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그리움이 서려 있다.

북쪽으로 가는 첫 역, 도라산역

DMZ트레인이 임진강역을 지나 도라산역에 정차한다. 민간인 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700m 떨어진 도라산역의 정식 명칭은 ‘도라산 국제역’. 코레일이 현재 추진 중인 유라시아횡단철도의 시작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역 내에 들어서자 ‘평양 방면’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평양은 고작 205㎞. 아직 평양행 열차를 탈 수는 없지만 남북 왕래가 가능해지면 도라산역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될 것이다. 도라산역의 필수 방문지는 연계 버스로 갈 수 있는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을 묶은 안보관광 코스다. 연계 버스를 타고 해발 156m의 도라산 전망대로 향하면 북한 최남단 마을인 기정동과 개성공단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3땅굴에서는 지하 갱도 300~400m가량을 직접 걷거나 셔틀을 타고 들어가 볼 수 있다.

DMZ의 생태에 관심이 있다면 도라산 평화공원을 찾아도 좋다. 역에서 약 350m 거리어서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다. 9만9545㎡ 규모로 한반도 모형 생태연못과 DMZ 자연 생태자료 등을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 등이 조성돼 있다.

평화가 내려앉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오후

임진각 근처에는 볼 만한 관광지가 천지다. 율곡 유적지 자운서원, 산머루 와이너리, 헤이리 예술인마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분단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마음을 토닥이듯 어깨를 감싼다.

전망대 외에도 발길을 붙잡는 볼거리가 제법 많다. 망대반, 평화의 종,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바람의 언덕’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게 없다. 전쟁 중 총탄투성이가 된 증기기관차는 그 자체로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수천 개의 바람개비와 거대한 조각상이 있는 ‘바람의 언덕’ 위에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하늘의 구름처럼 평온한 오후가 지나간다.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