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현생 인류의 뿌리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정설로 굳어진 것 같다. 우리 조상이 10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라 가계도를 그리면 노아의 방주 앞부분과 닮았다 해서 ‘노아의 방주 모델’로도 부른다. 유전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로만 전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아프리카의 한 여성(미토콘드리아 이브)이 인류 공통조상이라는 것도 밝혔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기존 이론은 크게 네 가지인데 남극대륙 이주설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은 수천, 수만년에 걸쳐 몽골족이 시베리아를 건너 이동했다는 베링 해협 유입설이다. 베링 해협은 유라시아와 같은 구대륙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가는 통로 중 가장 수월한 코스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태평양 이주설이 유력한 가설로 떠올랐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폴리네시아인이 비슷하다는 DNA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항해기술이 뛰어난 폴리네시아인이 전통 배인 캐터머런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이들이 지금의 멕시코를 거쳐 북아메리카까지 퍼졌다고 한다.
대서양을 통해 유입됐다는 설은 남북으로 나뉜다. 먼저 북대서양 이주설은 클로비스라는 석기 유물을 근거로 한 유럽인의 이동설이다. 동일한 유물이 스페인, 프랑스 주변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클로비스를 제조한 부족이 배를 타고 북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남대서양 이주설은 좀 생뚱맞은 듯하지만, 브라질에서 발견된 두개골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 5만년 전의 것으로 드러난 이 두개골은 아프리카계 인종에 속한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인들이 파피루스를 엮은 배로 멕시코 만류를 타고 브라질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엊그제 미국 과학자들이 멕시코 지하 40m 동굴 호수에서 발견된 1만3000년 전 소녀의 화석이 베링 해협 유입설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화석의 사랑니 에나멜 조직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했더니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만의 특징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 해협을 넘어온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직계 조상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다만 얼굴형이 원주민보다 약간 길었는데, 이는 이주 전에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유전자가 서로 섞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가 맞다면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이어 ‘아메리카 이브’의 비밀까지 다 밝혀진 셈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