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복권 구입에는 돈 아끼지 않으면서 노량진 수산시장은 찾지 않는 이유

입력 2014-05-16 17:41
당첨될 확률·기댓값 어이없이 낮아도
'합리적' 이라는 인간은
자신이 당첨될 확률 주관적으로 해석

일본 원전사태로 수산물 소비 준 것도
방사능 피폭 가능성 과대평가 한 것


[ 심성미 기자 ]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웨이킹 네드’ 로 본 복권의 경제학


아일랜드 바닷가에 52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 툴리모어. 주말이면 TV 복권 방송을 보는 노인들이 많다. 재키 오셰어(이안 배넌 분)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밤, 52명이 사는 툴리모어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689만4620파운드(약 12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키와 그의 친구 마이클 오설리반(데이비드 켈리 분)은 약간의 ‘콩고물’을 기대하며 당첨자를 찾아 나선다.

바닷가에 혼자 사는 어부 네드 드바인이 복권 당첨의 주인공인 걸 알게 된 재키와 마이클. 하지만 음식을 잔뜩 싸들고 집으로 찾아간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복권표를 쥔 채 누워 있는 네드의 차가운 주검이었다. 복권 당첨 사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복권표를 버리느냐 아니면 네드를 가장해 당첨금을 받아내느냐다.

결국 복권회사를 속이고 당첨금을 챙기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협조를 당부한다. 대신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고 제안한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1999년 개봉한 아일랜드 영화 ‘웨이킹 네드’는 눈앞에 찾아온 행운을 차지하기 위해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로또, 질 수밖에 없는 확률 게임

흔히 복권 당첨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들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벼락 맞을 확률은 대략 180만분의 1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복권이든 한국의 로또복권이든 6개 숫자가 모두 맞아야 하는 1등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2002년 말 로또복권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누적판매액은 약 29조원. 반면 당첨자는 대한민국 성인 인구의 0.01%에도 못 미치는 3000여명에 불과하다.

복권은 확률적으로 ‘돈을 잃게 돼 있는 게임’이다. 지난주 제573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당첨번호 6개를 모두 맞힌 사람은 8명으로 당첨금은 각각 16억4500만원이었다. 하지만 베팅 1회당 1000원을 거는 로또에서 1등에 대한 기댓값(16억4500만원×814

5060분의 1)은 고작 202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1등을 기대하면서 복권을 사는 순간, 무조건 798원을 떼어준다는 얘기다.

게다가 로또 당첨금은 아예 판매금액의 50%로 설계돼 있다. 1000원짜리 로또 한 장을 사면 500원을 운영비와 공익 기금으로 쓰고 500원이 당첨금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왜 로또를 살까

이렇게 기댓값과 당첨확률이 어이없을 정도로 낮은데도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경제학에선 ‘기대효용 이론’ 으로 설명한다.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결과에 관한 효용의 기대치를 따져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1등이 될 수도 있다는 심리적인 만족감 등 복권을 구매해 얻을 수 있는 기대효용이 구입하지 않을 때의 기대효용보다 크다면 합리적 인간들은 복권 구매라는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의미다. 실제 우리 주변에선 로또를 사면서 “5000원짜리 한 장에 1주일을 행복한 상상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 당첨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지만 심리적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 5000원 정도는 기꺼이 지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그는 ‘확률가중함수’라는 이론으로 복권 구매심리를 분석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확률가중함수는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인 확률이 객관적 확률의 크기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그 결과 그래프 1 처럼 사람들은 당첨될 확률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만족과 효용에 따라 행동한다는 도식을 그려냈다. 그는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낮은 사안에 대해선 과대평가를 하는 반면 확률이 높은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심리적 성향을 수학적으로 입증한 카너먼 교수는 주관적 확률이 객관적 확률을 이탈하는 기준점을 0.36이라고 봤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로또의 당첨확률은 0.36보다 훨씬 낮지만 주관적 당첨확률은 그보다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원전 사태로 수산물 수요가 급감한 것도 이런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방사능에 피폭될 확률은 극히 낮지만 그 가능성을 과대평가해 생선을 사 먹지 않는 것이다.

복권은 ‘역진적 세금’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은 대개 정부나 공공기관이다. 조세저항 없이 손쉽게 재정수입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두고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고도 공공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고통없는 세금”이라고도 말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도시 복원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복권 이벤트를 연 적이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제14회 런던 올림픽(1948년)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올림픽 복권’을 판매했다.

하지만 복권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역진적 세금(regressive tax)’이라는 지적도 자주 받는다. 일반적으로 조세 체계는 가난한 사람이 덜 내고 부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내도록 돼 있지만 복권의 경우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 영화에서 복권을 사는 시골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거나 돼지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들에겐 복권 구입이 힘겨운 현실의 탈출구이자 지루한 일상의 한 줄기 희망이었던 셈이다.

복권은 경기가 불황일수록 잘 팔리는 대표적 상품이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복권 판매액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다보니 복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복권의 역사’의 저자 데이비드 니버트 미국 위튼버그대 교수는 “복권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이란 공허한 꿈을 꾸게 하며 현실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지적했다.하지만 이 또한 일부 복권 중독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인 설명일 수 있다. 복권의 참된 묘미는 적당히 즐기는 데 있을 것이다. 문득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복권을 손으로 툭툭 치며 잠시 행복한 공상에 빠지는….

심성미 한국경제신문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