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서갈등 고조…미국·EU, 러시아 제재로 방어막 치는 데
[ 김보라 기자 ]
우크라이나의 동·서 분열 우려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동부 지역 도네츠크주, 루간스크주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주민투표가 치러졌고, 그 결과 찬성표가 90%가량 나왔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편입된 크림반도 사태가 동부 지역 전체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3단계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EU 28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리주의 지도자 13명과 크림반도 에너지기업 2개사에 대해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 국영에너지 기업을 포함해 보다 광범위한 경제제재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미국과 EU가 냉전시대의 ‘소련 봉쇄정책’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왕따국가(pariah state)’로 만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는 이에 ‘맞불 작전’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미 미국과 EU의 1·2차 제재 이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는 여전히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러시아를 포함해 현재 세계 14개국이 제재 대상국이다. 국제사회와 주변국 안보 위협 등을 이유로 서방국가와 국제기구는 ‘불량국가’라는 낙인을 찍은 뒤 경제·외교적 숨통을 조여가고 있다.
英 제국주의 무너뜨린 ‘수에즈 위기’
최초의 글로벌 제재는 1956년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수에즈 위기’라고도 불린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이권 다툼이 전쟁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는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항로로 1869년 프랑스 자본에 의해 개통됐다.
세계 최대인 수에즈 운하는 당초 영국이 99년간 소유한 뒤 이집트에 넘겨주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쿠데타로 왕조를 정복시킨 이집트 초대 대통령 나세르가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원유를 안전하게 수송할 항로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을 부추겨 10월29일 전쟁을 일으킨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 전쟁에서 압승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국제사회 비난에 시달린다.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진 것. 당시 이스라엘의 우방에 속하던 미국마저 등을 돌렸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총리 관저에 전화를 걸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미국은 영국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손잡고 영국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틀어막았다. 당시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영국은 차관이 끊기자 수에즈 운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소련이 한목소리로 비난하면서 프랑스도 빈손으로 이집트를 떠났다. 유엔은 11월14일 이스라엘 연합군 철수와 유엔군 파견을 결의했다. 유엔 평화유지군도 이때 탄생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는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에즈 위기는 제재가 국제 정세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근현대사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해석했다.
美 ‘세계의 경찰관’ 자처
영국 제국주의를 무너뜨린 미국은 1960년대 쿠바, 1970년대 이란과 남아프리카공화국, 2006년 북한에 이르기까지 각종 제재를 주도하는 ‘세계의 경찰관’을 자처했다. 미국은 현재 코트디부아르, 벨라루스, 시리아 등 국가와 다이아몬드 등 분쟁 광물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일부 기업에 총 24개 유형의 제재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제재 이유도 다양하다. 제재의 공식적인 명분은 ‘국제법 위반에 대한 대응’이다. 미얀마와 베트남, 코트디부아르, 수단 등은 내전 및 불안한 정치 상황을 이유로 투자와 원조의 제약을 받고 있다. 짐바브웨는 정부가 토지개혁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심각하게 어겼다는 이유로, 리비아는 테러 등을 이유로 제재 대상국이 됐다. 남아공(1977~1991)은 인종차별 정책 및 나미비아 점령으로 인해 제재를 받았다. 북한(2006~현재)은 이란(1979~현재)과 함께 핵실험 등을 이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체로부터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다.
서방으로부터 가장 오랜 기간 제재를 받아온 국가는 쿠바다. 1959년 쿠바혁명 후 카스트로 정권이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하면서 미국과 사이가 틀어졌다. 그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쿠바를 침공한 ‘피그만 침공’ 이후 양국 외교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미국은 1963년 쿠바 자산동결 규정을 발표하고 1992년 토리셀리법, 1996년 헬름스-버튼법, 2004년 추가 조치 등 제재를 강화했다. 모든 미국산 물품 기술 서비스의 직접 및 제3국을 통한 간접 수출도 금지됐다. 쿠바는 반세기가 넘는 경제 고립 결과로 외환시장 등의 불안을 겪고 있지만 최근 EU와 중남미를 중심으로 쿠바 제재 완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월 EU는 외무장관회의에서 쿠바와의 정치적 대화 재개와 정치협력협정 체결을 승인하기도 했다.
국가 제재→금융·특정 기업 제재로
미국 주도의 제재 정책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무역 제재가 가해졌던 이라크와 쿠바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이라크는 여전히 부패한 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고, 쿠바는 50년 넘는 금수조치에도 여전히 체제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사는 쿠바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서 벌어 고향으로 보내는 돈은 연 20억달러 이상이다. FT는 “겉으로는 제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은 쿠바의 최대 식품 수입국”이라며 “제재 조치 때문에 거래는 모두 현금으로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1990년대 들어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늘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스마트 제재 시스템’을 도입해 변화를 시도했다. 특정 개인이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강력한 제재를 하는 방식이다. 세르비아 정부 관료와 남미 마약 중개상들에 대한 특수 제재를 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후 ‘클린턴 살생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미국의 글로벌 제재는 9·11테러를 기점으로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한다. 이전까지 무역 제재, 무기와 원자재, 항공 및 외교적 제재가 중심이었다면 부시 행정부는 본격적인 금융 제재 조치를 도입한다. 불법 송금 우려가 있는 계좌를 모두 차단하고 전 세계 ‘불량 은행’을 꼽아 감시했다. 테러리스트들의 불법 자금 운송 등을 감시하기 위해 미 재무부는 부처 산하에 각종 정보기관을 신설했다.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