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규 기자 ]
1995년 8월, 한국의 첫 홈쇼핑 방송이 전파를 탔다. 서울 목동 ‘하이쇼핑’(현 GS샵) 스튜디오에서 여러 가전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하나로 만능 리모컨’이 판매된 것. 4만1600원짜리 리모컨을 3만5360원으로 할인해 준다는 쇼핑호스트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고, 회사 관계자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방송을 지켜봤다. 첫 방송의 주문량은 10개 남짓에 불과했다. 그나마 절반은 직원들이 산 것이었다.
같은 시기 ‘HSTV’(현 CJ오쇼핑)는 첫 방송에서 ‘뻐꾸기 시계’를 판매했다. 7만8000원짜리 이 시계는 방송시간에 총 7개가 팔렸지만 이 중 4개는 역시 직원들이 주문한 것이었다. 한국의 첫 홈쇼핑 업체인 두 회사의 1995년 판매금액은 34억원이었다.
한국 홈쇼핑 산업이 올해로 출범 20년차가 됐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홈쇼핑 업계 시장 규모는 11조27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년 만에 3000배가 넘게 성장한 것이다. 홈쇼핑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 유통채널이 됐다.
홈쇼핑 산업의 태동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홈쇼핑과 홈쇼핑텔레비전 두 곳이 홈쇼핑 사업권을 따냈다. 이듬해 한국홈쇼핑은 하이쇼핑으로, 홈쇼핑텔레비전은 HSTV라는 이름으로 개국했다. 하이쇼핑은 이후 LG홈쇼핑과 GS홈쇼핑을 거쳐 지금의 GS샵이 됐다. HSTV는 1년 만에 39쇼핑으로 이름을 바꿨고, CJ그룹에 인수된뒤 CJ홈쇼핑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현재는 CJ오쇼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홈쇼핑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1997년 말부터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로 인해 판로가 막힌 중소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성장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두 홈쇼핑 업체의 실적이 좋아지자 신규 사업자 선정 움직임이 일어났다. 2001년 9월 농수산TV(현 NS홈쇼핑)가 개국했고, 10월과 11월에는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과 현대홈쇼핑이 연달아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1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인 홈앤쇼핑을 만들면서 현재의 6개 홈쇼핑 체제가 완성됐다.
홈쇼핑 업계의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홈쇼핑 히트상품’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코비(현 락앤락)는 ‘락앤락 밀폐용기’를 판매해 큰 성공을 거뒀고 도깨비방망이, 원적외선 옥돌매트 등도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성장을 이어가던 홈쇼핑 업체들은 2003~2004년 무렵정체를 겪었다. 케이블TV 시청 가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아 판매를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004년 카드 대란이 터지면서 시장 규모가 1.7% 줄어들었다.
성장이 정체되자 홈쇼핑 업체들은 판매 효율이 낮은 카탈로그 발행 부수를 줄이고, 수익성이 높은 식품 등의 상품 비중을 늘리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업체별로 전담 택배업체를 지정해 이용하기 시작했고 인터넷몰도 열었다.
시장 규모 10조원의 벽을 넘은 것은 2012년이다. 패션 카테고리를 강화한 것이 큰 성과를 거뒀다. GS샵이 손정완 디자이너와 함께 만든 ‘S.J.와니’는 2012년 11월13일 첫 방송에서 60분 만에 1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석태 디자이너의 ‘칼 이석태X로보’ 가죽재킷은 같은 해 10월20일 16분 만에 준비한 1600벌이 모두 팔리며 실적을 견인했다. CJ오쇼핑은 피델리아 로우알파인 등 자체상표(PB) 패션 상품이 호조를 보이며 GS샵과의 경쟁을 이어갔다.
최근 들어선 패션에 이은 제2의 먹거리 찾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CJ오쇼핑은 가구, 소품 등 인테리어 상품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지난 7일 인테리어 전문 프로그램 ‘조희선의 홈스토리’를 방송한 것이 그 시작이다. CJ오쇼핑의 인테리어 상품 판매액은 지난해 790억원으로 2008년 520억원 대비 51.9% 증가했다. GS샵은 침구, 생활가전 등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은 새로운 먹거리로 렌털 서비스를 꼽고 있다. 지난해 양사의 렌털 매출은 각각 전년 대비 620%, 575% 성장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렌털 부문 방송시간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늘려 지난해의7배 이상 매출을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