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민경 기자 ] 삼성증권이 자회사인 삼성자산운용을 삼성생명에 매각함에 따라 19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손에 쥐게 됐지만 오히려 '걱정'을 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업황 불황으로 신규 투자가 쉽지 않은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자본이 쌓이면서 자본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삼성자산운용 지분 65.3%를 삼성생명에 넘기고 삼성선물 지분 49%를 매입하는 이사회 결의안을 지난 9일 통과시켰다.
이로써 삼성증권은 자산운용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선물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됐다. 자산운용 매각 가격은 2727억 원, 선물 매입 가격은 820억 원 수준으로 매각과 매입에 따른 차액을 계산해보면 삼성증권은 약 1900억 원을 벌게 됐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증권과 삼성생명 간 이번 지분 조정을 삼성그룹 금융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을 각 계열사로부터 2641억 원에 사들였다. 지난달에는 삼성카드가 가진 삼성화재 지분 30만주를 712억 원에 매입했다.
삼성생명 아래에 삼성증권을 포함한 카드, 화재, 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둬 삼성생명이 금융 지주회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증권이 손에 쥐게 된 현금은 가뜩이나 돈 쓸 곳을 찾지 못해 쌓아만 두고 있는 회사 측에 부담이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원재웅 동양증권 연구원은 "삼성증권의 경우 현재도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500%를 넘고 신규투자할 대상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자산운용 처분에 따른 추가 현금유입은 자본효율성 측면에서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안정적으로 연 200억 원 후반의 수익을 내는 자회사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악재라고 그는 진단했다.
현재 경영개선 권고 기준이 되는 NCR 비율은 150%, 경영개선 요구는 120%, 명령은 100% 수준이다. NCR이 높으면 증권사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걸 의미하지만 기준을 지나치게 웃 돌 경우 자본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걸 나타낸다.
정길원 KDB대우증권 연구원도 "자산운용 매각으로 삼성증권 자본은 추가 잉여가 발생하게 됐다"며 "현재 자기자본은 3조5000억 원 수준으로 이미 사업을 영위하는 데 충분할 뿐 아니라 대형 투자은행(IB) 기준인 3조 원을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황 위축에 따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감안하면 신규투자나 인수합병 등에 자본을 쓸 여지는 없다"고 지적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삼성증권이 자산운용 매각으로 더 늘어난 과잉자본을 '자사주 매입'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2월 김석 사장이 자사주 2000주를 매입하는 등 최근 들어 총 4000주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이번 현금 유입으로 최고경영자(CEO) 개인적인 자사주 매입이 아닌 회사 차원으로 매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혜진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융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연내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고, 여유자금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 없다"며 "현재로선 여유자금을 통해 자사주를 매입, 주가 부양에 나서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 역시 "자사주는 주가 방어와 성과 보수 지급 재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현재 삼성증권 주가 수준은 적은 비용으로 기대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그러나 "이번 지분 조정은 금융상품 관련 규제 강화로 영업 시너지가 감소한 자산운용을 매각해 신규사업을 위한 기반 강화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삼성선물과 협력 체계를 높여 주식, 채권을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로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1시46분 현재 삼성증권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700원(1.83%) 떨어진 3만7600원을 나타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