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진 정치부 기자) 북한이 핵폭탄을 능가하는 강력한 최신 비밀병기를 공개했습니다. 이름하여 ‘노래폭탄’입니다. 폭탄 제조자는 요즘 ‘핫’한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악단입니다.
북한 노동신문는 지난 11일 “모란봉악단의 노래폭탄은 그 어떤 미사일이나 수천만톤의 식량보다, 핵폭탄보다 더 위력하다”고 찬양했습니다.
노랫소리가 얼마나 인민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관람후기도 구구절절합니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몇 백마디의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삶과 투쟁의 교과서이다’, ‘백두의 혁명정신이 나래치는 공연을 보면서 투쟁열, 혁명열로 끓어오르는 격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식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래폭탄을 만들게된 건 ‘음악정치’를 펼쳤던 아버지 김정일의 영향이 큽니다. 김정일은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는 말을 남겼죠. “시대를 선도하고 인민대중을 불러일으키는데 혁명적인 노래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의 노래는 ‘건설과 생활에 이바지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은 경제난으로 힘들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 공훈국가합창단의 혁명군가를 퍼뜨려 인민들을 자연스레 세뇌시키고 노래로 불만과 분노를 승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는 인생지론을 펴면서 인간적 면모와 천재성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일이 ‘아무리 바쁘고 피로하시여도 음악을 감상하시였고 조선에서 창작된 노래를 다 알고계시며 세계명곡들에 정통하시였다’고 전합니다. 음악에 천재성을 보여 ‘음악예술론’도 저술했다는데 직접 썼는지는 확인이 안되네요.
이런 모습을 지켜본 김정은의 음악사랑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수 출신 이설주를 아내로 맞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김정은은 80년대 미국 대중가요를 즐겨듣고, 미국 60년대 유명 록 그룹인 도어스와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의 팬이라고 합니다. 올 초 방북한 농구계 악동 데니스 로드맨은 김정은이 노래방에서 팝송을 자주 불렀다고 했다죠.
김정은은 올해부터 자신만의 음악정치를 시도하는 모습입니다. 노래폭탄까지 만들어 본격적으로 인민들에게 투척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달 중순에는 집권 이후 처음으로 북한 전역의 예술인들을 평양에 불러 예술인대회도 개최한다고 합니다. 문학예술 부문의 창작가, 예술가들이 평양에 총집결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행보는 장성택 숙청 이후 침체한 사회분위기를 다잡고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설적인 정치 선전보다는 주민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죠.
북한 매체들은 ‘노래폭탄이 있기에 우리 조국이 그 어떤 원수도 범접 못하는 사상의 강국, 영원한 신념의 산악으로 위용 떨치고 있는 것’이라고 자랑스레 얘기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것도 모자라 예술마저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킨 모습을 보니 씁쓸합니다. (끝)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