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어줘서 고맙다"…세월호 참사가 일깨워준 '가족애'

입력 2014-05-09 21:14
'잊고 살았던' 가족의미 복원
아이들에 무조건 강요보다 자립심 키우는 분위기 확산


[ 김태호 기자 ] “엄마, 내가 만든 거예요.”

울산 삼산동에 살고 있는 전모씨(49·여)는 지난 8일 고등학교 2학년 딸이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받았다. 함께 건네준 카드엔 ‘어른들이 카네이션을 달지 않는 분위기여서 핀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어른스러운 배려심에 가슴 뭉클해진 전씨는 조용히 딸을 안아줬다. 그는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기 때문에 평소에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준 것 같다”며 “이젠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곁에 있어 고맙다’, 달라진 어른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족의 재발견’이다. 특히 희생된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은 더 애틋하다. 그래서인지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을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이 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씨(48)는 지난 주말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는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문득 ‘지금의 모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고가 어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아이들에게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라고 가르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의심 없이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며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자립심을 키워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청담동의 한 고등학교 교사 정모씨(29)도 “세월호 사고 이후엔 학생들에게 ‘말 좀 잘 들어라’는 얘기 대신 스스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휴일은 가족과 … 기차역 ‘명절’ 분위기

세월호 사고 이후 휴일엔 가족 여행을 떠나거나, 고향을 찾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난 연휴 기간 서울역 분위기가 명절 때와 비슷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기업 다니는 문모씨(29)는 연휴 기간 부모님이 계신 부산을 찾았다. 당초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사고 이후 매일 ‘잘 지내고 있냐’고 안부를 물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고 없이 고향집을 찾았더니 매우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 결혼을 앞둔 강모씨(32·여)는 요즘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동안 결혼 준비를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다는 반성에서다. 어버이날 가족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선 결혼 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강씨는 “오랜 시간 살아온 가족들과 떨어질 생각에 가슴이 아픈데, 세월호 사고 이후엔 그런 마음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가족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부모님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털어놓고 있다”고 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서인지 대형마트에선 ‘삼겹살’ 등 식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마트에선 삼겹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롯데마트의 신선식품도 21%나 더 팔렸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큰 사고 이후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삼겹살 등의 식품 위주로 매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