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올 1학기 중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의 수학여행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수학여행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는 학부모들이 많은데다 또 다시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이 모두 정부로 돌아올 것이 뻔하니 일단 이번 학기에는 중단시킨 것이다. 사실 수학여행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에게 크고 작은 사고가 날 때마다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대참사가 발생하고 보니 아예 근본적으로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자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이동하다보니 아무래도 안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대형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학여행을 무조건 없애는 게 능사냐는 반론도 없지 않다. 수학여행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없애야”
수학여행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사고 건수부터 인용한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전국 초·중·고에서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만 총 576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1년 129건이던 것이 2012년 231건, 2013년 216건 등 급증하는 추세라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 수치는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보상받은 현황을 집계한 것인데 접수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수학여행 사고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한다. 아무리 교육적 목적이 있고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수학여행이라도 이처럼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낳다는 것이다.
이광호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수학여행은 여가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 학창시절을 보낸 기성세대에는 신선한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기회의 장이었지만 요즘 청소년에게는 고된 일상에서 탈출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교육적 가치와 목적이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둘러보게 한 후 저녁이면 자유시간과 장기자랑으로 이어지는 판박이식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과연 어떤 교육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규모 수학여행은 비용 문제로 인한 안전 문제, 부실한 숙소와 식사, 알맹이 없는 일탈 등의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주부 K씨는 “이번 사고가 터지기 전에도 아이가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갈 때마다 집에 오기 전까지는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이라며 “아이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도무지 왜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 반대 “수업 연장선인데 무조건 폐지 안돼”
전본수 서울백석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교육은 무엇보다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익히는 데 있으며 수학여행과 수련활동도 교육 확동의 장으로 그 교육적 가치와 필요성은 분명하다”며 수학여행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 시스템을 개혁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교육학부모회의 박범이 회장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학여행도 매우 중요한 교육과정의 하나고 교육 목표가 있고 성장 발달과정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전제, 폐지보다는 안전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면서 안전하고 질 높은 수학여행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충남 서산의 서령고등학교 최진규 교사도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수학여행은 수업의 연장선 상에서 평상시 접할 수 없는 곳에서, 자연 및 문화를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힌다는 분명한 교육적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또 경제적 여건상 가족 중심의 레저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이 문화적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주장이다.
학부모 오모씨는 “수학여행과 소풍은 꼭 가야 한다. 아이들이 매일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럴 때만이라도 밖에 나가서 머리도 식히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안전한 시스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미리 사전답사하는 등 꼼꼼하게 체크하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 생각하기
아마 수학여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학창시절 여행 전날의 들뜬 마음, 그리고 현지에서 아이들과의 즐거운 밤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 중에도 수학여행지 자체나 숙소나 음식 등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여행지에서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밤은 기대된다는 아이들이 많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수학여행은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단순히 추억이 아니더라도 교실을 벗어난 곳에서의 단체 생활은 분명히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안전이다. 지금처럼 비용 절감을 위해 많은 인원이 동시에 가야 하는 수학여행은 필히 안전사고와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학여행 자체는 유지하되,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원 수를 제한하고 여행지나 여행사 숙박시설 음식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런 것도 규제다. 규제완화가 국가적 과제이지만 안전문제, 특히 어린 학생들의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그것은 필요한 규제라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