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사] GATT·WTO로 낮춘 통상장벽…신흥국들 빈곤 탈출

입력 2014-05-09 17:53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2) GATT체제의 출범

스무트-홀리 관세법 시행 후 국제교역 급감·대공황 악화
새로운 무역체제 필요성 느껴

1947년에 출범한 GATT 체제…최혜국·내국민 대우 원칙
국제무역 중요 기반 다져



20세기 후반부터 상품 서비스 노동 자본 등 시장이 국제적으로 통합되는 이른바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됐다. 많은 나라가 상품의 국제적인 거래를 통해 자국의 부를 창출하고 증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세계화는 정보통신 발달과 더불어 대다수 인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있고, 특히 세계화에 참여한 신흥국들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빈곤율이 크게 낮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및 저개발의 원인으로 세계화를 지목하는 시각도 있고, 세계화에 따른 신흥국의 부상으로 선진국에선 산업과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시장이 국제적으로 통합되는 세계화는 사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때의 세계화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참여한 제한적인 세계화였다. 세계화의 혜택도 일부 국가들에 한정됐다.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등이 20세기 초반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듯이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은 큰 이득을 봤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보호무역 이민제한 등의 조치와 함께 세계화는 급격히 후퇴했다. 이는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대표적인 보호무역정책이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인데, 1930년 제정된 이 법은 2만여개 품목에 대해 역대 최고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주요 국가들의 경쟁적인 관세 인상과 블록화에 따른 고립주의를 불러와 국제교역은 급감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의 수출과 수입이 50% 이상 감소했고, 국제 교역량도 30% 이상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수출, 투자, 자본축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대공황을 더 악화시켰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파괴적 결과를 경험한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교역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무역체제 필요성에 공감했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 출범부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자유무역을 위한 국제적인 제도적 기반을 확립해 나간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46년부터 국제무역기구(ITO) 설립과 무역자유화를 위한 다자간 협약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ITO 설립은 무산됐고 대신 GATT 체제가 출범했다. 이 같은 결과는 미국의 내부 문제에서 비롯됐다. GATT의 경우 1945년 미국 행정부가 무역협정 체결에 관한 권한을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상태여서 큰 문제가 없었으나 ITO 같은 국제기구 참여는 의회 인준이 필요했다. ITO는 미 의회의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고 자유무역의 제도적 장치인 국제기구 설립은 거의 50년 후에나 성사됐다. GATT는 전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장기간 호황을 통한 자본주의 황금기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47년 체결된 GATT는 관세를 크게 낮추고 동시에 국제무역과 관련된 중요한 원칙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최혜국대우’ 원칙과 ‘내국민대우’ 원칙은 GATT에 참여한 국가들에 교역에서 동등한 경쟁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최혜국대우’는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회원국들이 교역, 특히 수출과 관련해 가장 좋은 조건을 동등하게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 ‘내국민대우’는 수입품에 대해서도 국내산과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조세와 규제에서 수입품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GATT 체제는 1960년대 케네디 라운드, 1970년대 도쿄 라운드, 1980년대 후반부터 1994년까지 진행됐던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회원국을 확대해갔고 관세를 대폭적으로 인하했으며, 관세장벽 외에도 비관세장벽, 규범 등 무역과 관련된 각종 장벽을 낮추며 자유무역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GATT 출범 시 23개국에 불과했던 참여국가가 우루과이 라운드 때는 116개국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자유무역체제의 발전은 괄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선진국 관세장벽이 낮아지면서 수출주도형 전략을 택한 신흥국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등의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무역체제 발전에 따른 선진국 시장의 개방 덕택이었다. GATT 체제의 발전은 1995년 WTO 창립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지속적으로 완화돼 국제교역의 증가, 국제적인 자본 이동의 증가에도 기여했다.

자유무역 발전은 세계화의 확산으로 이어졌고,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 그중에서도 개발도상국들에는 무역을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축소시키는 계기가 됐다. 개도국의 많은 국민들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는 구체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예를 통해 확인된다. 친세계화 정책을 통해 1990년대 중국은 연평균 9% 이상, 인도는 6% 이상의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빈곤인구는 150만여명 감소했으며, 같은 시기 인도의 빈곤율도 40%에서 20%로 떨어졌다. 자유무역체제의 발전과 세계화는 개도국의 성장과 빈곤 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