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죽은 논문' 양산하는 대학교수들… 실적용 연구 급급

입력 2014-05-09 13:53
수정 2014-05-09 14:16
상위인용 10% 논문비율 '라이덴랭킹' 서울대 500위에도 못 들어



[ 김봉구 기자 ] 이달 초 2개의 세계대학평가 결과가 나왔다.

우선 1일 발표된 영국 대학평가기관 더타임즈(THE·Times Higher Education)의 ‘설립 50년 이내 세계대학평가(THE 100 Under 50)’. 포스텍(포항공대)과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각각 세계 1위와 3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같은 날 네덜란드 라이덴대가 국제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한 ‘라이덴 랭킹(Leiden Ranking)’도 공개됐다. 역시 포스텍과 KAIST가 국내 1·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텍은 보도자료를 내고 크게 알린 THE 평가와 달리 라이덴 랭킹을 홍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합대 기준 국내 1위를 차지한 이화여대(전체 3위)가 이를 적극 PR했다. 세계 순위는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세계대학평가는 국내 순위와 함께 전체 순위를 알리는 게 보통이다.

세계 순위를 확인해 보면 이유가 짐작이 간다. 국내 1위 포스텍은 전체 173위에 그쳤다. KAIST 283위, 이화여대 306위, GIST(광주과학기술원) 456위 등 조사대상 세계 750개 대학 중 500위 안에 든 국내 대학은 4곳에 불과했다. 서울대(520위)는 500위 밖으로 처졌다.

라이덴 랭킹은 4년간(2009~2012년) 국제논문 1000건 이상 발표한 대학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상위 10%의 논문 비율을 조사했다. 인용도(citation), 즉 논문이 얼마나 많이 활용됐는지가 평가 척도다. THE·QS(Quacquarelli Symonds) 등 잘 알려진 세계대학평가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연구논문의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평가로 분류된다.



성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라이덴 랭킹은 교수 1인당 논문 건수가 아닌 전체 건수를 보는 지표상 맹점도 있다” 며 “만약 평가기준을 논문 1만 건 이상으로 상향 설정해 시뮬레이션 하면 서울대는 세계 20~30위권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논문 안 쓰는 ‘철밥통’ 교수를 없애기 위해 논문 숫자를 강조해 왔다.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건수를 업적평가·승진심사 같은 교수평가 요건에 넣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교수가 실적을 채우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죽은 논문’을 양산했다. 실제 활용도가 높고 연구 가치를 인정받는 논문은 여전히 부족하다.

성 처장은 “단순한 논문 숫자보다 질적 수준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며 “서울대는 본부-단과대-학부의 단계별 평가를 통해 본부에선 최소한의 논문 건수를 요구하고, 해당 단과대나 학부에서 인용도나 임팩트 팩터(영향지수) 등 논문에 대한 질적 평가를 해 ‘살아있는 논문’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의호 포스텍 평가관리위원장도 “사실 1년에 논문 한 편 안 쓰는 교수도 많았다. 그런 철밥통 문화를 깨려고 논문 건수를 우선 강조해 온 상황” 이라며 “앞으로는 논문의 질적 수준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논문의 양에서 질로 초점이 옮겨가는 일종의 과도기란 설명이 뒤따랐다. 교수들이 ‘내수용 연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KAIST 평가 관계자는 “국내 대학들이 교수들의 논문 생산을 강조한 게 몇 년 되지 않았다. 논문 인용도 같은 지표는 시차를 두고 상승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국내 타깃이 아닌 글로벌 활용이 가능한 논문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해외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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