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잉락 총리직 상실…정국 또 '혼돈' 속으로

입력 2014-05-07 21:34
수정 2014-05-08 03:55
헌재 "권력 남용" 결정…집권 2년반 만에 '낙마'
각료 9명도 퇴진 명령…과도총리에 상무장관 지명


[ 양준영 기자 ]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47)가 권력 남용으로 총리직을 상실하게 돼 태국 정국이 또다시 소용돌이칠 전망이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7일 잉락 총리가 타윈 플리안스리 전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경질한 것이 권력 남용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잉락 총리는 즉각 총리직을 상실했다. 헌재는 각료 9명에 대해서도 퇴진을 명령했다.

잉락 총리는 2011년 야권으로 분류되는 타윈 전 NSC 위원장을 전보 조치한 뒤 당시 경찰청장을 NSC 위원장으로 발령냈다. 공석이 된 경찰청장에는 그의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처남이 임명됐다.

잉락 총리는 “인사 조치는 총리로서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헌재는 “자신의 가족 이익을 위한 ‘숨겨진 의도’에 따라 인사가 이뤄졌으며 이는 헌법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잉락 총리는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으로, 2011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약 2년 반 동안 바람 잘 날 없는 태국 정국을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탁신 전 총리의 포괄적 사면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반(反)탁신 진영의 퇴진 공세에 시달렸고, 결국 헌재 결정으로 낙마했다.

일단 태국 정부는 새 과도 총리에 헌재로부터 퇴진 명령을 받지 않은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상무장관을 지명, 국정 공백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 퐁텝 텝칸차나 부총리는 헌재 결정 후 기자회견을 열어 내각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잉락 총리의 실각으로 태국 정국은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친정부 시위대인 ‘레드셔츠’는 헌재 결정에 반발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를 사법부가 자의적 법률 잣대로 낙마시킨 ‘사법 쿠데타’라고 간주하고 있다.

반면 수텝 터억수반 전 부총리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도 지난 5일부터 시작한 시위를 13일까지 계속한 뒤 14일 ‘최후의 결전’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헌재의 이번 결정은 태국이 재총선을 앞둔 가운데 내려진 것이어서 정국 전망을 더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태국은 반정부 시위로 인해 지난해 12월 의회를 해산하고 지난 2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으나 헌재가 투표 파행을 이유로 조기 총선 무효를 결정했다.

그러나 반정부 진영과 제1야당인 민주당은 재총선 수용 입장을 아직 밝히지 않아 재총선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으며, 재총선이 순조롭게 시행될지도 미지수다. 반탁신 진영은 선거를 다시 치르는 대신 중립적 인사로 과도 총리를 임명해 자칭 개혁을 추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졌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25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양준영 기자 hamaroi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