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노동시장을 걱정하던 게리 베커를 기리며…

입력 2014-05-06 20:30
게리 베커 전 시카고대 교수(83)가 엊그제 영면했다. 그는 인종차별이나 가족, 범죄 등 기존 경제학자들이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주제들을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인적자본 이론의 미시경제적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교육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이며 교육으로 인한 노동의 질적 증가가 바로 자본 형성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과 대만이 짧은 시간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도 뛰어난 인적자원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경이 매년 글로벌 인재포럼(HR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그래서다.

베커 교수는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한국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고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도 우려했다.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정규직 해고가 어려워지고 그 결과 기업들은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기업 해고를 규제하는 정부 정책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그는 또 노조가 독점적 지위를 갖고, 공장을 멈출 정도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가 노동 유연성 문제를 지적한 지 오래지만 한국 노동시장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2010년 기준 100에서 지난해 104.2로 거의 답보상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연례보고서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등 한국은 생산성 정체에 갇혀버렸다고 진단했다. 인적자원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우수 자원은 해외로 유출되고 해외로 나간 인적자원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공계 해외 유출은 2008~2011년 중 총 13만3302명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오지 않는 비율도 43.2%에 달한다. 노동시장이 경직되면 인적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없다는 그의 이론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하던, 자유시장의 전사 베커 교수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