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진 정치부 기자) ‘북쪽왕국’의 공식 행사에서 사회자가 B 차관의 이름을 장관들보다 먼저 호명했다. 이 나라의 국무총리 A는 올 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공식활동이 뜸했다. 다음 날, 정부는 B 차관을 총리급으로 승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왕은 “내일 국무총리가 나 대신 연회에 가서 축하해주라”고 지시했다. B를 비롯한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 국무총리 A는 없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 국무총리가 A에서 B로 교체된 것 아닐까?
똑같은 현상이 북한에서 일어나자, 통일부는 이렇게 답했다. “내일 B가 연회에 가면 밝혀지겠지요.” (왕은 김정은, A는 최용해, B는 황병서다.)
북한의 정치 상황을 꿰고 있어야 하는 주무부처라 하기엔 무책임한 대답이다. 북한의 2인자 교체라는 중대한 인사를 두고 정보망을 총 가동해도 시원찮을 판에 힌트까지 다 준 문제의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열이 분명한 북한에서는 차관급인 황병서를 장관급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보다 먼저 언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과거 김정각이 총정치국 제1부국장직을 맡고 있었을 때도 그의 이름은 항상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 다음에 호명됐다. 황병서가 최용해를 누르고 총정치국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다.
김정은이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최용해에게 지시를 내린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최용해가 건재했다면 “총정치국장이 가서 축하해주라고 전하시오”라고 했어야 맞다. 그럼에도 정부는 판단을 미뤘다.
이런 행태에 북한 전문가들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라고 북한이 명확하게 호칭해야 확신하는 것 같다”며 “과거 북한 군부 지도자들이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공표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하는데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국방부가 박봉주 총리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해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가 둘 다 유임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당시 통일부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뭉개다가 비판을 피했다. 그 뒤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북한의 동향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주무부처의 태도로는 적절하지 않다.
어쨋든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의 배지를 달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최용해의 해임이 기정 사실화됐다.
여기까지 확인하는데 6일이 걸렸다. 북한 정권의 2인자 교체를 알아내는데 이 정도인데, 김정은이 실각한다면 그 때는 얼마나 걸릴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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