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소장, 한국 사회의 성(性)을 말하다

입력 2014-05-04 13:46
수정 2014-05-08 11:49
우리 사회에서 성(性·sexuality)은 아직도 은밀한 것, 감추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질문에 답해주지 않고, 쉬쉬거리기 바쁘다. 그러므로 교과서적인 성교육도 늘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올해로 17년이다. 배정원 소장(53·사진)이 성교육에 매달려 온 시간. 그는 1997년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에서 청소년 성교육 및 성 상담 전문가 활동을 시작으로,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성생활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성 고민 상담 게시판을 운영하며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강산이 두 번 변했을 만큼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의 성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배 소장에게 물었다.

"글쎄요. 얼마나 변했을까요. 시대가 많이 바뀌면서 '마녀사냥'과 같은 19금 토크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기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 이중적이죠. 농담으로 야한 이야기를 즐기면서 부부의 성생활, 미혼의 성을 이야기할 때면 심각해지잖아요."

# 한국사회의 性, 큰 위기

지금 한국 사회의 성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청량리 588'을 위시한 구시대적인 집창촌은 사라졌다. 하지만 강력한 법규에도 불구하고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조교제나 성폭행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에 대한 죄책감마저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나잇 스탠드'를 스스럼없이 말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에서도 한국 사회의 성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배 소장은 "사랑이 바탕에 깔렸지 않은 섹스는 동물적이며 무의미하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청소년 성교육, 군인 성교육, 건강과 성 박물관 관장 등 다양한 경험과 사례를 접했던 배정원 소장은 우리나라 성교육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성은 생활 교육이에요. 우리나라 청소년 성교육은 성관계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어요. 그래서 대부분 청소년들이 포르노나 야한 동영상을 통해 성 지식을 얻고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보에 노출되죠. 교육정책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우선 교대나 사대 전공과정에 성교육을 필수과목으로 넣어야 합니다."

행복한 성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그의 주 교육 대상은 성인이다. 어른들의 성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아무리 교육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배 소장은 잘 안다.

"어른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가치관을 가져야 청소년들에게 전도 할 수 있어요. 자신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으며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성을 거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죠."

# 도대체, 아름다운 性이란 무엇인가

배정원 소장은 섹스를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한다.

"일반 사람들은 섹스라고 하면 쾌락적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더러운' 행위로 꺼리기도 하죠. 그러나 모두 잘못된 시각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하는 섹스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대화법 가운데 하나에요."

사랑은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또 양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협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섹스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실제 이러한 욕구해소적 성행위를 통해 개개인은 갈수록 외로워지며, 상대 이성에 대한 불신만 증가해요. 정작 이성으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거죠. 원만하고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선 대화를 많이 나누고 조금씩 자기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 아는 만큼 행복해지는 사랑의 기술

배정원 소장은 빡빡한 강연 일정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연구활동에 매진했다. 또한, 다양한 학회 및 행사에 참여하며 새로운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성에 관한 세 번째 책 '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를 펴냈다.

"섹스는 '경험과학'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알면 알수록 더욱 잘하게 되고, 멋졌던 경험은 기대를 부르고, 더욱 긴밀히 연결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죠. 적어도 외롭지 않고 강력한 아군이 있는 것처럼, 함께 연결되고 더없이 위안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섹스에요."

배 원장은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섹스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인 몸과 마음의 교통인 섹스를 잘 몰라서, 혹은 말로 하기 어려워서, 미진한 채로 덮어두었던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글 = 김현진 기자 sjhjso1234@hankyung.com / 사진 =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

◆ 배정원 소장은

성 전문가. 성교육, 성 상담자 및 성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배정원 소장은 중앙대에서 언론학 석사를, 이화여대에서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내일여성센터에서 교육팀장, 성폭력상담소 상담부장을 겸임했고, 경향신문 미디어칸성문화센터 소장, 대한성학회 사무총장과 부회장, 국방부와 육군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신문과 방송 등 다수의 언론 매체를 통해 성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과 세종대 겸임교수, 한국여성상담센터·한국성폭력위기센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쾌한 남자 상쾌한 여자' '여자는 사랑이라 말하고 남자는 섹스라 말한다' 공역서로 '성상담의 이론과 실제'가 있다.